대한민국 정부는 중요한 정책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흠결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제대로 된 소통과 토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논란이 된 사드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국방부는 지난 달 사드 배치를 경상북도 성주로 전격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성주 주민들의 민심이 악화되자 지난 4일 박대통령은 지역 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성주군 내 다른 지역으로도 이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단 한 번 성주 군민과의 대화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지 22일 만이다. 이러한 결정을 하기 전에 스웨덴의 도시 예테보리 당국처럼 토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스웨덴의 두 번째 도시 예테보리. 이 도시의 중간을 가르는 예타강 하류에는 엘브스보리 다리가 있다. 예테보리의 북쪽과 남쪽을 잇는 이 다리는 녹색이다. 다리 색깔을 정한 것은 시민들이었다. 시 당국은 “엘브스보리 다리 도색을 하는데 어떤 색깔을 칠하면 좋겠느냐”는 공고를 지역신문에 냈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많은 토의를 거친 끝에 최종 수렴된 색깔이 녹색이었다. 공고부터 도색까지 6개월이 걸렸다.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의견이 수렴되지 않으면 토론하고 또 토론한다. 다리 색깔 하나 결정하는 데도 6개월이 걸리는 나라다. 그러니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한다. 결정이 났을 때는 승복하고 힘을 보탠다.
 

정부는 국민들이 국가 정책에 반대할 때 이를 수용해야 한다. 왜 반대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대화해야 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사드 배치를 확신했고 성주를 최적지로 판단했으며, 사심 없이 국익과 국민들을 생각하고 결정한 건데 반대하니 억울하고 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반대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본인 임기에 그 일을   못하더라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예테보리 시의 관계자는 “민주주의는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린다. 느리지만 강하다. 기다릴 수 없다면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괴로워도 소통, 소통, 소통밖에     없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사드의 유해성을 언급한 인터넷 게시 글에 대해 잇따라 ‘삭제’를 의결하고 있다고 한다. 삭제만이 능사일까? 왜 그런 이야기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생성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박자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토론을 이어가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해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 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고 판시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GMO 식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괴담이나 외부세력의 선동, 혹은 무식의 소치 등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 정부가 나서서 ‘GMO 국가?’라는 전국 차원의 대중 논쟁을 촉발했다. 손쉬운 설문조사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정보전달 매체와 시민참여 방식들을 결합시켜 심층적인 토론을 창출해냈다. 대중 논쟁의 조직을 맡은 조정위원회는 먼저 영국 각지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을 수차례의 워크숍에 초청해 난상 토론을 벌임으로써 대중 논쟁에서 다루어질 의제들을 정했다. 다양한 관점을 담은 영화, 토론 촉진을 위한 CD-ROM 배포를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GMO 식품의 위험성과 사회적 수용도에 대한 판단이 자리를 잡아갔다.
 

토론 문화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정치, 경제, 사회적 주요 사안에 대해서 토론을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근대 민주주의가 태동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토론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서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어 있는 국민의 존재가 이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 세월호 사건에 관련된 국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나아가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며, 대한민국 사회가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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