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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숙사양관수 소설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6.0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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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깃드는 곳은 하나인데 드나드는 길은 다섯 갈래다. 그런 방을 그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다. 상대의 거기로 스며드는 그들은 길목도 자기만의 길이다. 둘이 함께 사는데도 머무는 곳은 서로 다르다. 그 틈새는 둘이 만나면서부터 지금껏 점점 더 벌어지는 중이다.

남자가 자신에게로 드나드는 여자의 다섯 길 중 한 갈래나 두 갈래를 어떨 때는 네 갈래까지 틀어막는다. 여자더러 남은 두 길이나 한 길로 드나들라는 것이다. 여자는 여태껏 남자의 통로를 막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허용된 길들을 잘 닦아놓아 남자가 편하게 들었다가 나가도록 배려한다. 둘은 자신들의 길 때문에 곧잘 얼굴을 붉힌다.

결혼기념일 밤인데도 싸움을 피하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의 길을 네 군데나 막아버린 탓이다. 여자가 길을 터달라 앙탈을 부린다. 남자가 그건 내 몫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아니꼬우면 너도 길을 막으라 큰소리친다.

여자가 징징거린다. 어떻게 당신이 드나드는 길을 막냐며 울먹거린다. 결혼기념일인데 두 군데만 더 터 달라며 애교를 떤다. 남자가 한풀 꺾이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냐고 남자에게 묻는다. 너를 너무 좋아해서 오직 한 길로만 받아들인다고 대답한다. 너를 손끝으로 느끼며 꿈을 꾸는 것은 천상의 기쁨이라 덧붙인다.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너만의 조건이라 말이 안 된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공유하는 조건을 갖자.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떼를 쓴다. 결혼기념일인데 그 정도도 못 해주냐며 따지고 달려든다. 남자가 더는 말하지 못한다.

여자가 남자 눈에서 안대를 벗긴다. 남자 눈동자에 눈부처가 새겨진다. 비로소 여자가 들어앉았다. 이번엔 코마개를 빼낸다. 남자 머릿속에 샤넬5 향기가 파고든다. 여자가 마스크도 벗기더니 입술에 키스한다. 길고 긴 입맞춤이 달콤하게 이어진다. 귀마개도 빼낸다. 여자가 소곤거리며 귓속질하자 남자가 더는 참지 못한다. 여자를 끌어안으며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여자도 남자를 오감으로 받아들인다. 서로의 몸으로 파고든다.

그들의 영혼은 사랑으로 허기를 채우고 쉬려 한다. 스스로가 상대의 온몸으로 뻗치려 다섯 갈래로 스며들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다섯 개의 기운이 잘 합쳐질 때 오롯하게 깃드는 것이다. 그들의 몸이 침대에서 상대를 채워주고 쉬게 한다.

침대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서로의 깊은 방으로 다가가는 디딤돌이다. 변치 않으려 애쓰는, 사랑을 다잡으려 몸부림치는 둘에게 다섯 갈래로 드나드는 방의 툇마루다. 방은 사랑이 오감으로 거치는 곳이다. 그녀가 머무는 안채이고 그가 잠드는 사랑채다.

그러나, 그들은 머지않아 궁(宮)을 떠난다. 영혼을 남긴 채 방을 벗어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방을 기리면서도 딴 곳에 시선을 둔다. 남자가 자신의 오감 중 네 길을 또 막아버린다. 하나 남은 남자의 길이 누구를 위한 길인지 여자가 의아해한다.

여자는 남자의 방이 낯설다. 아니, 낯익다. 학창 시절 신세 지던 기숙사 같다. 남자가 여자를 마주하는데 시선은 허공이다. 기숙사를 떠올리며 하나 남은 길마저 막아버린다. 여자가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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