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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카페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6.12 13:14
  • 댓글 8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모녀가 지나간다. 나트랑의 오월은 머리가 달궈질 정도로 햇볕이 내리쬔다. 햇볕은 참겠는데 몸을 휘감는 습기는 이글거리는 태양보다 끈질기고 숨 막힌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어버린 여자의 눈빛처럼 집요하고 따갑다. 오토바이들이 자동차를 호위하듯 달린다. 열대 지방 후덥지근한 공기와 오토바이 매연 냄새가 섞여 머리가 어질하다. 잰걸음으로 이동하는 관광객들과 달리 현지인들은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더위를 즐기며 느긋하다.

가이드가 안내한 콩 카페 간판 글씨는 조개가 지나가다 끊긴 자국과 닮았다. 까막눈이 된 걸 보니 이국땅에 닿은 걸 실감한다. 언제던가. 가족 모임에서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코로나 전후로 가족끼리 국내는커녕 해외 나간 지 오래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여행 간 게 8년 전 중국이었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여자들끼리만 뭉치자고 입을 모았다. 친정엄마, 친정 언니, 나, 올케, 조카들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기대하던 일상의 탈출인데 설레지 않았다.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데 핑계 댈까, 궁리만 했다.

핑계 못 찾아 베트남에 도착한 거다. 나트랑 콩 카페는 유명 코스답게 사람들로 가득해 1층엔 앉을 자리가 없다. 카페에 들어서니 액자 안에 색깔별로 실을 감아둔 실패가 수백 개는 됨직하다. 2층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은 두 사람이 나란히 가기엔 무리다. 오를 때 삐걱대는 진동이 사람들 말소리, 음악과 뒤섞여 발끝을 들뜨게 한다.

2층서 눈에 띈 건 왼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물건이다. 1층 실패 액자의 여운을 선반 위에 수십 개의 재봉틀이 반긴다. 칸을 세니 대략 50개가 넘는다. 재봉틀은 아담한 크기로 헤어드라이어를 세워둔 모습이다. 칠 벗겨지고 몸통에 헝겊을 동여맨 모습 등 비슷하지만 닮은 건 없다. 낯선 장소서 보는 재봉틀에 향수가 인다. 외갓집에 앉은 건가.

재봉틀이 진열된 벽 아래 긴 탁자에 앉는다. 몰려드는 손님들로 대충 닦인 흔적이 퇴적물처럼 쌓였나. 닦이지 않은 이물질이 낡은 재봉틀 냄새처럼 끈적인다. 카페보다는 박물관 구석에 숨어 도둑 커피를 마시는 착각이 든다. 커피 크레마 거품이 쇠 비린내 내음과 만나 코코넛 커피 향기가 목을 타고 흐른다.

누군가 말한다. 모녀지간 여행이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딸 조합이다. 친정엄마에게는 내가, 두 언니도 딸과 함께다. 나만 딸이 없다. 딸에 대한 미련이 솟구쳐 잔액 없는 통장을 재확인하듯 허탈하다.

모계 유전이라는 미토콘드리아를 나눌 딸이 없다는 사실을 되뇐다. 난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약 30만 개, 정자의 150여 개에 비하면 무려 2,000배에 이른다. 미토콘드리아는 아버지에게서 하나도 받은 게 없는 셈이다.

즉 외갓집 윗대의 것을 받는단다. 딸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흡족한 표정이 단지 모성애의 작용만은 아닌 거다. 아, 나도 저런 표정을 바란다. 내가 여행을 망설인 까닭이 나를 부추긴다. 엄마의 표정을 조금만 훔치라고.

올케랑 언니는 젊은 딸인데, 엄마만 늙은 딸이어서 어쩌누. 내 말에 모두 깔깔거린다. 나만 웃지 못한다. 이게 다 재봉틀 카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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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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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mi 2024-06-17 17:28:58

    작가님의 글을 보고 엄마와 딸들과 여행 계획을 세워보려고요~
    콩카페를 상상해보게되네요ㅎㅎ   삭제

    • 박미양 2024-06-16 17:07:56

      글을 읽고 나트랑 달랏 여행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넘 더워서 헥헥 거리며 관광하던곳이였는데 나름 인상갚었던곳이라 한번 더 가고픈곳입니다.   삭제

      • euna 2024-06-15 17:07:05

        딸없는 작가님의 처지가 제게도 공감이라 웃프네요ㅜㅜ 그럼에도 멋진글에 힐링되네요^^
        같이 힘내보아요!!ㅎㅎ   삭제

        • Lynn 2024-06-13 20:40:24

          호호호♡
          나트랑 저도 가보고 싶어요^^
          근데요^^
          작가님 글에서
          저는 벌써 나트랑 2박3일 여행한 느낌이에요♡
          작가님 글 읽을때마다 힐링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삭제

          • 정은성 2024-06-13 20:31:19

            여자들의 왕국이네~~~   삭제

            • 봄봄 2024-06-13 14:23:49

              여행에서도 글을 쓰시는 작가님 ~ 솔직담백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   삭제

              • 나눔 2024-06-13 08:27:15

                모녀지간의 여행~저도 꿈꿔봅니다^^   삭제

                • 김정애 2024-06-12 21:41:53

                  작가님은 센스쟁이 ㅋㅋㅋㅋㅋ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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