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을 산책하던 남녀 손님 일행들이 담벼락 곁에 쌓여있는 통나무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한 남자가 묵직한 도끼자루를 잡더니 부인인 듯한 여자를 마주 보고 씽긋 웃었다. “ 마님 ! 오늘 제가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결연하게 상의를 벗고 힘차게 도끼를 들어올리더니 이내 내려쳤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자세와는 달리 도끼는 중심에서 빗나갔고 나무는 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통나무를 제자리에 놓고 다시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일행들이 표정을 감추듯 입을 가리고 킬킬거렸다. “ 이 친구야 !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 한 친구가 위험을 느꼈는지 질책하듯 만류하자 그는 한동안 망설이다 돌아섰다. “ 돌쇠야 ! 오늘 저녁밥은 없다.” 그의 등 뒤로 한 여인이 내뱉는 단호한 한 마디에 그들의 깔깔깔 웃음소리가 하늘로 퍼져갔다.

옛 추억을 생각게 하는 사람들의 놀이를 생각해서 통나무와 도끼는 가끔 그 자리에 둔다.  산 속이라 겨울이면 레스토랑 난로를 피울 땔감은 손쉽게 구해진다. 엊그제 마을 이장님이 실어온 참나무가 긴 몸통을 눕힌 채로 마당에 쌓였다. 그가 요구한 나무 가격이 양에 비해 턱없이 낮아서 쌓여진 나무더미 속에 그의 마음도 함께 있는 듯하여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하다. 나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마다 그 정확한 셈법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쌓인 나무들을 보며 내가 해야 할  큰 일거리인 듯이 많은 일들을 혼자서 어떻게 하느냐며  안쓰러워한다. 집안은 물론 주변에 손볼 게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해야 할 노동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틈틈이 마음이 내킬 때 마다 놀이처럼 하는  가벼운 일이기도하다. 한 번씩 놀이하듯 하는 일이란 보람과 건강을 담보하는 일이라서 즐겁다. 날씨는 차갑지만 바람을 가르며 장작을 패는 일은 가라앉은 마음에 활기를 몰고온다.

장작 패는 일이 반복될수록 굳어있던 근육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얼굴에도 발갛게 생기가 돈다. 도끼의 날이 나무에 닿을 때마다 나뭇결 속에 갇혀있던 결정체들이 뛰쳐나오듯  반듯하게 갈라졌다.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난 나뭇결은 올올이 이쁘고 정갈했다. 껍질은 말랐지만 아직 물기를 머금은 나무의 연갈색 속살은 부드러웠고 풍기는 향이 짙었다. 장작을 얼굴에 들이대고 한참을 흠흠 거리며 그 진한 향기에 취해있었다. 나무에서 어떻게 이런 진한 향이 나올 수 있을까?

색채는 빛의 고통에서 비롯된다고 어느 시인이 읊조렸듯 향기로운 것에도 반드시 험난한 과정이 있었음을 생각한다. 때때로 하얀 나뭇결 속에 박힌 단단한 옹이가 오래된 상처 자국처럼 진했으며 주변으로 까맣게 변색된 부분도 나타나곤 했다. 아마도 이웃하는 나무로부터 빛을 차단당했거나 심한 가뭄이나 바람 등으로 인해 힘들었을 시절을 이야기 하는 듯했다. 산 속에서 숲을 이루며 살았던 나무에게도 과거가 순탄치 않았음을 알리는 흔적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연민이 일어났다. 나무의 진한 향기는 오롯이 치열한 삶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응축된 눈물과 같은 것이 아닐는지.......

옛날에는 참나무가 주위에 너무 흔하고 무거워서 땔감 이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어서 천대받던 나무였는데 요즘은 그 쓰임새가 많이 달라져 있다. 참나무가 지닌 독특한 향 때문에 질 좋은 바비큐를 굽는데도 참나무만을 고집하기도하고 고급목재나 숯으로도 까지 쓰여진다 하니 참나무를 보는 세상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참나무가 위스키산업을 번창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고 보면 살고 있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사물의 쓰임새와 가치가 다르고 평가방법도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사람도 참나무의 일생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듯하다. 지나온 길이 험난할수록  드러나는 향기가 짙다. 그러기에 내 앞에 와 있는 고난을 너무 힘들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보여지는 모습이 그가 가진 전부가 아니더라도  묵묵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새 해 나에게 걸어보는 주문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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