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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문화원 최초, 외국 역사 탐방 다녀와... ‘문화의 힘’ 체감공자묘, 강태공 사당, 태산 일대 견학
  • 홍봉기 기자
  • 승인 2024.05.08 11:03
  • 댓글 1

지식은 머리에 남지만 여행은 몸에 남아
다양한 문화 경험, 우리 문화발전의 시금석

 

광양문화원이 문화원(원장 김종호) 설립 이래 최초로 외국 역사탐방을 다녀와 의미를 더했다. 그동안 국내 탐방은 매월 1회 정도 다녀왔지만, 외국 역사 탐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탐방은 이노철 광양문화원 부원장이 추진해 이루어졌으며 문화원 이사들을 비롯해 문화원 회원들 31명이 5박6일 일정으로 청도를 방문했다. 

위동훼리는 660명을 태울 수 있는 여객선으로 실내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청결했으며 식당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아 모두가 만족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인천항에서 16시간 걸려 청도항에 도착 본격적인 역사탐방을 시작했다. 배로 이동하는 관계로 16시간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 시간은 오히려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배에 오른 회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시간을 만들었다.

공자님 고향 곡부에서 첫날 보내 
배에서 하선하자마자 5시간을 이동, 저녁 12시쯤, 세계적인 정상들이 머물다 간 궐리빈사(闕里賓舍)호텔에서 숙박했다. 궐리빈사는 곡부에 위치한 4성급 호텔로 중국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호텔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맛도 일품이다. 이 호텔이 더욱 인기가 있는 이유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바로 공자를 모신 ‘공묘‘ ‘공림‘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은 후 일행은 본격적으로 공자 사당을 방문했다. 다소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다닐만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간 날이 토요일라 그랬는지, 학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택동 문화혁명 시대에는 공자의 사상을 지우기 위해 애를 썼는데, 지금은 오히려 공자를 배우고 알리는데 앞장을 서고 있는 중국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종호 문화원장과 장명완 전 광양시의장은 “공자님이 강조한 충효 사상이 지금의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좋은 명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충효사상만 잘 교육해도 국민들을 통치하는데 크게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공자의 사당과 그에 딸린 부속 건물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특히 이곳 사당을 중심으로 공(孔)씨 성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묻힐 수 있다고 한다. 일행은 이동 수단을 이용해 공자 무덤을 돌았다. 10만 기(基)가 넘는 무덤이 있어서 그런지 규모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숲처럼 보였다. 김경희 부원장은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다하나 그래도 우리나라 정신적 기둥은 역시 공자님의 사상인 만큼 정말 방문하기를 잘 했다”고 말했다. 공자 사당 탐방을 마친 일행들은 점심을 먹은 후, 태산으로 이동했다.

 

태산 정기를 받고 내려와 
태산(泰山)은 중국 산둥성 태안(타이안시)에 위치한 산으로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등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도 가장 유명한 산 가운데 하나다. 특히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불린 태산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중국 5A급여유경구(관광명소 품질수준 분류 및 평가를 위한 국가표준에 의거하여 AAAAA 수준의 관광명소에 대한 12개 표준 중화인민공화국 관광청이 발급한 국가관광경관지역품질평가위원회가 지정한 명승지, 관광지를 뜻함)에도 지정되어 있다. 

물론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타이산 산’으로 불러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식 한자 독음인 태산(泰山)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갈수록 태산’, ‘걱정이 태산’, ‘티끌 모아 태산’, ‘할 일이 태산’ 등 태산에서 유래한 수많은 관용어만 보아도 태산이 얼마나 유명한 산인지 가늠할 수 있다. 중국에서 태산은 그저 단순한 산이 아니라 한국의 백두산이나 금강산과 비슷하게 중국인들의 일종의 문화적 성지로서 기능하여 오랜 세월동안 많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되었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완수했음을 하늘과 땅에 보고하는 의식인 봉선(封禪)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했고, 진시황 이후로도 도교의 성지로서 오악(五岳)의 으뜸이라 하여 자신이 중국사에서 족적 좀 남겼다고 자부하는 황제들은 모두 태산에 직접 올라 제를 올렸다. 태산의 최고봉은 옥황봉(玉皇峰)으로 높이는 해발 1,535m인데 중국 문화에 끼친 이름값을 감안하면 별로 높은 편은 아니다. 당연히 중국 산들 중에는 태산보다 높은 산이 널렸고, 남한의 산으로 한정해도 10위권에 조차 못 든다. 다만 태산은 실제로는 그렇게 큰 산이 아니지만 광활한 화북 평야에 다른 산 없이 홀로 우뚝 서있다 보니 꽤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직접 도보로 산을 오르고 싶었지만 여건상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도교 성지로 불리는 태산
도교의 성지였던지라 지금도 태산 곳곳에 도교의 사원이 있으며 옥황봉 정상에는 옥황정(玉皇頂)이라는 도교의 사원이 있다. 내부에는 태산극정(泰山極頂)이라고 하는 정상석+비석 같은 것이 있는데, 이 비석에는 태산 높이가 1,545m라고 적혀있다. 양사언이 쓴 유명한 시조의 첫머리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하는 구절이 유명하다. 공자도 이 산에 올라보고 “천하가 작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예로부터 “산 사람은 장안에서, 죽은 사람은 태산에서.”라는 글귀처럼, 중국인들은 태산은 죽은 사람들의 영이 모이고 다스리는 영산이라고 믿었다. 

계단은 중천문(中天門)~남천문(南天門) 구간으로 일명 ‘십팔반(十八盤)’이라 불리는 곳이다. 올라가려면 18번은 넘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으로 길이 800m, 계단의 수는 1600개 정도 된다. 남천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천가(天街)라고 하는 숙소, 음식점 등이 밀집된 상가거리가 나오며 천가를 지나 서신문(西神門), 벽하사(碧霞祠), 동신문(東神門)을 지나면 당마애가 나오고 옥황정까지 갈 수 있다. 이날 함께한 김애란씨는 “비록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 보고 왔지만, 태산에 직접 올랐다는 자체만으로 크나큰 자부심이 느껴진다”며 “태산의 정기를 받은 만큼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고 말했다.

 

강태공 사당 방문
마지막 날에는 낚시로 유명한 강태공(본명 강상) 사당을 찾았다. 공부를 대단히 좋아했던 강상은 70세까지 관직에는 나가지 않고 공부만 했다고 한다. 부인은 계속 뒷바라지하다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였고 식량이 떨어진 그는 집 근처 위수 강변에서 낚시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이때 휘어있지 않은 낚싯 바늘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하여 강태공이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낚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또는 낚시를 하긴 하였는데, 그 낚시대가 수면에서 세치는 높은 곳에 있었다고 해서 나온 이야기가 ‘태공조어 이수삼촌(太公釣魚 離水三寸)’이다. 백수로 지내며 낚시를 하던 중 그 근처에서 사냥을 하던 서백(西伯) 창(昌), 즉 훗날의 주나라 문왕의 눈에 띄어 중용된다. 이후 문왕과 아들 무왕을 보좌하여 역성혁명을 달성, 주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마침내 왕으로 봉해졌다. 역성혁명에 성공하고 개선하는 그의 앞에 가출했던 태공 아내가 폭삭 늙어서 돌아와 받아달라고 엎드리자 그는 그릇에 담긴 물을 바닥에 쏟은 후 “엎어진 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覆水不返盆)”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복수불반분’이라는 고사다.


청도 주변 돌며 탐방 마무리
일행은 강태공 사당을 모두 돌아본 후 다시 청도(칭따오)로 이동해 칭다오 주변을 산책하는 여유를 가졌다. 특히 해변에서는 많은 남성들이 수영하기에 아직 이른 날씨인데도 바다에서 수영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산책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왜 독일이 이곳을 정복해 자신들의 도시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는 풍경이었다. 칭다오 날씨는 1년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기 때문에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비례해 집값은 물론 물가도 비싸다고 한다.

마지막날에 일행은 古박물관과 5.4광장 그리고 식민지 시절에 건립된 건축물을 관광하면서 칭따오 여정을 마무리 했다. 참고로, 기름기가 많은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은 간단한 고추장이나 깻잎 등을 가지고 가면 큰 도움이 된다. 일행 중에 김치, 고추장, 김, 멸치, 깻잎, 된장 등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되살려 주는 큰 공신역할을 했다. 자고로 지식은 머리에 남지만 여행은 몸에 남는다고 했다. 몸에 남는 여행은 노년 때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고 하는 말처럼 이번 문화 탐방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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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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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2024-05-15 09:35:57

    중국은 역시 광활한 땅을 가진 일종의 문화적 성지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된 역사깊은 나라다.광양 문화원과 함께한 즐거운 여행으로 오래동안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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