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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선배(善培)가 효도하는 효배(孝培) 된 이야기"부모는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5.0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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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중 한 명은 일 년 선배(先輩)인 선배(善培: 왼쪽 사진 )라는 이름의 효배(孝培)다. 여친이면 효자(孝子)라고 별호(別號)를 지어 주려 했는데 남친이라서 효배라고 다른 이름 하나 지어 주었다.

원래 호(號)라는 것이 무슨 예술이나 문학 등의 뭔가 좀 하는 이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우리 문화상의 예의와 그들만의 세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예우로서 만든 것이라 별호라 하기보다 별명(別名)이라 하고픈데, 별명이라 함이 우리 사회에서는 격을 조금 낮추는 약간 농이 섞인 것이라서 별호라고 하여 높여 주고 싶어서이다. 이름이 착하다는 뜻의 선배(善培)인데도 굳이 효배라고 별호를 지어 주고 싶어함은 효심(孝心)이 아주 깊기 때문이다.

현대판 심청이라고 해도 부족한 표현이 아닐 듯 싶다. 연로하시고 약간의 치매증세가 있으신 어머니를 정말로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본인의 형편이 여유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쉬울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훨씬 더 어렵고 힘들 텐데도 잘 모셔오고 있다. 벌써 그 시간들이 3년째에 이르고 있다.

가끔 방송에서 치매부모님을 모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공통적인 견해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치매가 없어도 이런 저런 크고작은 노환이 있다면 그도 쉽지 않기에 그렇다. 아마도 곁에서 보기만 하는 우리는 정말로 그 힘겨움을 모를 것이다. 위로 누님과 아래로 남동생이 있는 삼형제인데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또 어머니에 대한 사랑, 젊은 날 자신으로 인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도록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진심어린 효심으로 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본인이 웃으면서 지난날 어머니의 속을 너무 많이 썩혀드렸다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속에서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듯도 하다만 어찌 다 알겠는가? 이런 저런 일들을 다 말하려고 한다치면 그 숱한 일들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냐 만은 그래도 한 두가지로라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지난날의 자신이 후회스럽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힘들어 하면서도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될 당연한 일을 할 뿐이다 라고 웃으며 말한다.

벌써 우리 나이가 낼 모레면 환갑을 바라본다. 어느새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거나 아니면 듬성 듬성하여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법도 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거의 모든 머리카락이 희긋희긋이 아닌 그냥 깡 하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머리화장 즉 염색신세 지고있는데 그나마 숱이라도 많아서 다행이다. 허나 효배는 나와는 반대로 자고나면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지고 안 보인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얼멍 얼멍해져 간다. 참 옛날에는 잘 나가는 멋쟁이였는데 말이다.

인생무상이다. 어느새 이렇게 멀리 와 버렸다고 세월의 무게에 눌려 나이를 헤아려 보려고 할치면 깊은 한숨이 차가운 강바람에 절로 나오고 마냥 매섭기만하다. 하지만 세월 앞에서 자신의 무상(無常)함을 마냥 슬퍼할 겨를이 없다. 본인이 그러 할려치면 어머니를 모심이 더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챙겨 드리고 이것 저것 준비하여 어르신 주간 보호센터 차량이 8시에 오면 태워서 보내 드려야한다.

주간 보호센터는 말 그대로 낮 동안 거동이 불편하여 돌봄이 필요하신 어르신들을 보호하여 드리다 다시 오후 5시 경에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복지 시설로 정부 보조하에 운영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노인 요양병원, 재가 복지센터, 주간 보호센터 등이 여기 저기에 생기기 시작하였다. 주간 보호센터는 마치 아이들 유치원과 성격이 비슷하여 어르신 유치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오육십대인 우리들은 이제라도 눈에 조금씩이나마 익혀 두어야 한다. 빠르면 십년, 늦어도 이십년이면 골프채보다 더 가까와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 어머니께서 식사를 하시고 센터로 아무 탈 없이 잘 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자기 일을 할 수가 있다.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뒷산 텃밭의 풀도 제거한다. 간단한 집청소와 함께 밀린 빨래며 이것 저것을 조금씩 하는데 이러한 일들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어떤 이는 치매부모님을 모시는 게 힘들어도 어렵지는 아니할 법도 한데 효배는 힘들고 어렵다. 오래전에 이혼하여 아내가 없다. 아들은 아이 엄마랑 살고 있어 가끔 전화로 만난다 한다.

이제와서 후회해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가끔은 때늦은 후회와 깊은 외로움에 지난날의 행복했던 날들을 하나 둘 꺼내어 달빛에 술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추억해본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지나버린 세월이야 가고없어 마치 꿈과도 같은 것을. 그래도 후회보다 그리움이 더할 때면 어느 밤엔들 쉬이 새벽을 맞이 하겠는가?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기도 힘들지만 그다지 깊이도 못잔다 한다. 어느새 새버린 깊은 밤들은 오늘도 새벽을 데리고 또 하루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잠시나마 깊은 꿈속에서 만났던 아들의 짧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살며시 맴돌지만 그것도 잠시, 부엌으로 가서 어머니 아침을 준비하여 드린다.

가끔 전화가 온다. 어제 밤도 한 숨도 못 잤다 한다. 어머니께서 아들을 붙들고 밤새 이야기를 하시는데 했던이야기 또 하시고 또 하시는데 들어 드리다 그랬다 한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사소한 일들로 보통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말한 것보다 훨신 더 많을 것같다. 어느 때는 자식에게 폐끼친다고 자해를 하시어 응급실로 모셨다 했다. 그러면 그 이후의 상황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어느 것 하나도 정상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고비도 서너번 인듯하고 본인이 간병하다 힘들어 건강이 나빠졌고 급기야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위기상황은 모면했지만 옆에서 지켜보기가 마치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위태하고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그러한 어려움속에서 함께 기꺼이 어머니를 모시는 동생과 친구들의 응원, 그리고 교인들의 기도가 있어서 큰 힘이 된다. 다행이다. 결코 쉽지도 않고 자식된 모든 이들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이지만 모든 자식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이 핑계 저 변명을 대고서는 피할 수도 있는 상황을 용기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리 옆에서 잘한다, 고생하고 있다고 위로하고 응원해도 그 힘듦이 얼마나 가벼워지겠냐마는 그래도 하나 있는 동생이 매주 3번 정도 퇴근 후 와서 잠시 한 두시간이라도 교대하여 주어 형님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며 동생이 와주는 것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또 내가 이런 저런 말들로 응원해주면 얼마나 좋아 하는지 모른다.

요즘처럼 빠르고 변화무쌍한 시대가 예전에 있었을까? 자고나면 무엇인가가 새로 생겨나고 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없다. 문명이 급속히 변하고있다. 그렇다고 문화와 가치관까지 급하게 변하지는 말아야하는데 결코 그렇지도 않은듯 하다. 우리들이 끝까지 지켜야할 충ㆍ효ㆍ예의 가치관도 조금씩 퇴색되어 가고 있다. 윤리가 무너지고 도덕의 가치가 무시되고 있다. 쉽고 편하게 사는것이 마땅하게 여겨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개념도 시대의 변화로 점점 변모해가는 요양병원으로의 모심이 시대의 변화를 핑계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올해로 85세이신 울엄니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참으로 의미가 있는것 같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고 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얼마나 힘들게 키우셨는지. 내가 아이를 낳아 가슴에 품어 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또 키우려니 얼마나 애가 타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어려운 전후시대와 보릿고개를 지내시며 자식들을 키우셨으니 지금의 우리가 자식 키움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울어머니께서 그려셨다 '' 아아가 이 쨘해라. 애기 놓고 일주일도 못 누워있다 그 추운 김밭에서 개발허고 이 !'' 사실 그러셨다. 한 동네 사셨으니 효배의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으셨으리라.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시어 자식들을 키우셨던 우리의 부모님들이 유독 싫어하시는 곳이 생겼다. 그곳을 울엄니께서 ''가두는 곳''이라 하셨다. 교도소라는 말인가? 아니다 어르신들이 카리키는 가두는 곳은 요양병원을 말한다. 그 말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지만 볼수있는 의미가 절로 느껴진다.

효배가 뇌졸증전조현상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약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할 때 주위의 지인들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실 것을 권유했다. 나도 그랬다. 그때 그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그의 목소리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의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자신의 몸도 돌봐야 하건만 아들과 떨어지기를 싫어하시는 어머니를 차마 병원에 모실 수가 없다하였다. 정말로 대단한 친구이다.

효배라고 부름이 어찌 과하다 하겠는가? 가끔 동창들과의 모임에도 가야하고 누군가와 만날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워야 할 때가 있으면 정말로 힘들다고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크게 나무란다. 그런 거 다 포기하고 잠시도 어머니 혼자 계시게 하지말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가끔 전화를 한다. 잠깐 친구 부모님이 상을 당해 잠시 부조금만 주고 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안계셔서 덜컹 하는 마음에 온 동네를 찾아보니 동네 어느 모퉁이에서 앉아 계시더라고. 그런 어머니를 보고서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려 자신의 몸을 팔아 임당수에 몸을 던졌다 했다. 비록 전래 동화이지만 분명히 심청전을 만든이는 그시대에 그와같은 효녀를 보고서 만들었을 것이다. 효배의 어머니 모심을 보고 공양미(供養米) 300석에 스스로 자신을 팔았다는 의미를 알 것같다. 그것을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자신의 생활을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뒤로 했다는 의미이다. 친구를 만나 놀러 가고 싶고 취미생활도 하고픈데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의 시간을 모두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즉 형편이 안 되어도 최선을 다하여 효도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효배가 그러하다. 어머니를 모시기위해서는 평범한 직장에서의 출퇴근 시간은 맞지 않다. 어머니를 아침 8시에 주간보호센터로 보내 드리고, 또 오후 5시에 다시 집에서 받아 드려야 하기에 맞지 않아 파트타임 알바와 비슷한 개념인 장애인활동보조사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빠듯하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그리고 대단하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잘 살고 있는 친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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