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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일지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5.08 10:45
  • 댓글 5

살구가 거실 창문에 앞발을 뻗고 몸을 세워 바깥을 내다본다. 살구는 한국 토종 고양이다. 코리안 숏트 헤어, 줄여서 코숏이라 부른다. 길고양이인 살구를 임시보호처에서 데려온 건 1월이다. 살구는 코숏 중 검정, 황색, 흰색의 삼색 얼룩이다. 살구가 집에 온 지 석 달이 넘어간다. 남편이 몇 년 전부터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자고 날 설득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말이 반려동물이지 사람 하나 들이는 무게를 지닌다.

집에는 군대 간 둘째가 5년 키운 팩맨 개구리 두 마리까지 내가 책임지고 있다. 둘째가 유치원 때부터 키운 동물이 누에, 토끼, 도마뱀 등 열 손가락을 넘는다. 그나마 둘째는 동물들을 정성으로 보살피고 관리를 잘한다. 기숙사를 가거나 지금처럼 군 복무 중만 아니면 내가 성가실 건 없다.

애들 보는 것도 버거워하던 남편이 외로워서 들이자는 동물이 내겐 반가울 리 없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느니 차라리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게 낫다고 우겼다. 시무룩한 남편의 모습에 나는 뒤치다꺼리를 잘한다는 조건으로 고양이 키우는 걸 허락했다. 산책시키고 사람만을 바라보는 개보다는 독립적인 고양이가 성가시지 않으니까. 애완동물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길고양이를 데려오자고 정했다. 

지인을 통해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분을 알게 됐다. 임시보호처에서 2개월 남짓 된 살구를 켄넬에 넣어 집으로 왔다. 며칠은 숨기에 급급한 살구를 찾느라 바빴다. 살구는 머리 들어갈 틈만 생기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나흘 적응을 마친 살구는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조짐이 불안했다. 내가 생각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더 자라니 점프력도 상승했다. 나는 주방을 넘나드는 살구를 경계하며 냉동고 위에 물건을 올려 천장까지 쌓았다. 살구는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달과 고양이처럼 정직하지 못하게, 소리도 없이 밤새 식탁 위를 다니고 인덕션을 스크래치 냈다. 아침이면 까만 인덕션에 살구 털과 발자국이 명백한 증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육식물 화분도 넘어뜨리기를 반복했다. 살구는 애들도 건들지 않던 내 영역을 침범하는 악당으로 변했다. 나도 고양이가 된 건가. 영역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는 1500mm 탁자 위에 화분들을 올렸다. 잎이 늘어진 식물은 살구의 발톱에 잘려나갔다. 항아리에서 살던 구피 가족들도 갈수록 수가 줄어들었다. 

살구는 갸릉갸릉 대다가도 돌변해 할퀴거나 물었다. 책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면 호기심이 많아 장난이 심해졌다. 고양이가 아닌 개냥이였다. 살구와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건 나지 남편이 아니었다. 나는 살구와 부딪히면서 날이 서고 예민해갔다. 고양이를 데려와 키운다기보다 내가 살구에게 묶였다. 나도 자유를 갈망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고양이의 변덕스러운 습성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눈치 안 보고 천방지축인 고양이로 인해 질렸다. 누군가를 위해 고양이를 책임지는 천사 노릇은 하지 않기로 결론지었다. 내가 편해야 살피고 보듬어진다. 살구를 언니 주택으로 추방했다. 차라리 악역을 택하리라.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의 비난도 달게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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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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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토 2024-05-18 16:04:35

    문득문득 안부가 궁금하던 우리 작가님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것 같아 반갑고 좋습니다다♡♡♡   삭제

    • 김경숙 2024-05-08 22:03:48

      반려묘 살구와 함께 한 일상을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재밌게 표현한글이
      제 맘에 와닿네요
      소중한 경험 하셨네요
      언니네로 보낸 살구가 한동안
      눈에 선하실듯하네요~   삭제

      • 나눔 2024-05-08 20:08:06

        살구와의 시끌버끌 일상이 넘 재미있어요. 저도 반련견, 반려묘를 키울 자신이 없네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기에~   삭제

        • 김숙희 2024-05-08 15:27:48

          ㅎㅎㅎ 생명체를 들여서 함께 한공간에서 생활하는건 힘든일 같아요....
          저도 집에서 아이들이 개, 고양이 등 키우자고 해도...
          너희가 독립해서 책임질 자신이 있을 때 하라합니다.
          작가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그정도도 아직 못합니다.....
          그래도..그동안 살구와 정이 들어서..언니네에 자주 가실 듯 합니다.~   삭제

          • 김은영 2024-05-08 14:03:32

            야옹야옹♡ 그리워서 데리러 가실것 같아요^^ 작가님 글에는 사람의 향기가 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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