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이 모두 솜사탕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겨울방학 때가 되면 시골 할머니 초가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며 얼음과자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해 보았었다.

어릴 적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끔은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노란 은행잎이 금 조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두 부질없는 희망사항이기에 멋쩍은 웃음으로 생각을 지워버리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 그만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은, 많은 것이 풍족해진 지금보다 어려웠던 지난날의 추억이 더 아름답게 여겨지고 행복했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단지 지나간 세월에 대한 연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려웠어도 넘치는 정이 있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돕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고, 내 일이 아니어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넘쳤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끼니때가 되면 식사는 하셨는지 꼭 안부를 물었고, 갓난아이를 이웃집에 미안한 마음도 없이 선뜻 맡기고, 학교 갔다 오는 아이까지 부탁을 해도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탓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날이 그리운 것은 그런 정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풍요롭다고 해도 아직도 물질로 채우기 힘든 허전한 마음의 공간이 있고, 인간다운 삶을 향한 소박한 바람과 최소한의 행복도 지킬 수 없는 절망적 현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어도 지난날이 그냥 그리운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계절에 희망을 외쳐야 한다. 주님이 가난한 세상에 오셔서 전해주었던 희망의 메시지를 외쳐야 한다.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낮은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희망이 없던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인생의 목마름으로 헛된 두레박질을 하던 수가성 여인이 만났던 그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희망보다는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풍요로움 보다는 궁핍함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이 있기에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소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주님이 오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기가 인류의 소망이 되고 구주가 되시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희망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약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이 하찮아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 우리의 가슴 속에서 새로운 소망이 싹 트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은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삶의 고난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아기가 자신들의 구세주이며 온 세상의 희망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외쳐야 할 또 하나의 메시지는 사랑이다. 딸랑 딸랑거리는 자선냄비 종소리는 바로 그 사랑의 외침이며, 거룩한 울림이다. 말로만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행위이며, 어려운 이웃들의 곁으로 다가서는 우리들의 작은 몸짓이다.

1년 내내 모은 저금통을 가지고 온 어린아이의 따뜻한 정성, 한 개에 50원하는 병을 얼마나 많이 주어 팔았는지 가슴이 찡해지는 25,950원의 기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생의 유품에서 나온 현금을 기부한 가슴 아프면서도 마음 따뜻한 봉사, 수년째 1억원을 자선냄비 통에 넣고 가는 주민의 이야기는 충분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종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수줍은 듯 넣고 가는 소중한 기부금들과 추운 발 동동 구르며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헌신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하려는 우리 모두의 거룩한 몸짓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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