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지나가는 바람결에 도토리가 길 위로 후드득 쏟아진다. 고목에서 쏟아진 도토리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 입구를  덮어버린다. 나무는 그가 한 해 동안 지나온 흔적을 정리하듯 몸을 털어낸다. 곧 이어 낙엽도 떨어질  것이다. 때가 되면 자신을 비우는  나무의 일생을 생각한다. 우리도 한 해에 한 번씩 마음속에 지닌 욕심, 고통, 번민, 이런 것들을 버리고 새롭게 몸을 추스릴 수 있다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도 깃 빗자루로 수북한 나뭇잎과 도토리를 쓸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싹 트고 꽃피고 열매 맺었는데 결국  썩어지고 버려지니  그들을 품어왔던 나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요즘 다람쥐녀석들은 배가 부른 건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가끔씩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굴러다니는 도토리가 신기한 듯  허리를 굽혀 몇 알 집어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여기 저기 흩어져 유혹하는  도토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땅바닥에 주저앉듯 점차 손길이 바빠진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다가가 비닐봉지를 몇 장 건네자  고마워하며  활짝 웃는다. 이윽고 계곡에 있던 일행까지 그들과 합세한다. 고목 아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가을의  평화로운 그림이다.

사람이란 자연에 기대어 있을 때 한층 소박하고 온순해 보인다. 그들은  나에게 왜 이 많은 도토리를 줍지 않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글쎄! 왜 주워야하는지 대답거리가 궁색해지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만다. 처음부터 도토리의 주인은 다람쥐라고 생각했는데.....녀석들, 어디로 간 것일까?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산에 도토리나무(상수리나무)가 많은 이유가  바로 다람쥐 때문이란 얘기가 있다. 다람쥐는 겨울동안 먹을 양식인 도토리를 주워 동굴이나 바위틈에  열심히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수시로 드나들며 먹는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 10개 중에 6개 정도만 기억해내고 나머지는 찾질 못한다.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도토리는 그 후 비와 바람의 영향으로 싹이 트고 자라서 튼튼한 나무가 된다. 머리가 나쁜 녀석들 덕분에 우리나라에 많은 상수리나무가 우거졌다한다. 그러고 보면 머리가 나쁜 녀석들이어서 세상에 큰일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똑똑한 사람도 우직한 사람도 골고루 있어야 세상이 더욱 살만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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