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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일 때문에 엄마 아파하시는 거 자꾸 걸려서 맘이 안 좋아요. 몸 좀 아끼세요, 제발.”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아들이 건넨 한 마디에 고마움과 서운함이 묘하게 엉켰다. 날 걱정해주는 것 같았는데 말꼬리에 붙은 ‘제발’이라는 단어가 핀잔처럼 느껴진 때문이리라.
“그랬니? 미안... 엄마가 생각 없이 끙끙거렸구나.”
그랬더니 이번에는 대포알 같은 기세로 말풍선이 날아왔다.
“그게 왜 엄마가 미안할 일이에요~ 엄만 왜 뭐든지 엄마가 미안해요? 제가 나쁜 아들 된 것 같잖아요.”
에효... 고3병 고3병 하더니 병 맞구나. 이만한 일로 퉁퉁거릴 녀석이 아닌데, 싶었다. 헤어지는 마당에 품새를 가지고 말씨름 할 수 없고 그렇잖아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텐데 거기에 더 보탤 의향도 없는지라, “그런 뜻 아닌데...”하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말을 아끼는 걸 느꼈는지 서둘러 저도 사과 하더니, 차에서 내려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챙겨주었다. 서로 말은 좋게 하긴 했지만 축 늘어진 어깨를 보이며 걸어가는 녀석이나 그걸 바라보는 나나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아들의 모습이 학교건물 뒤로 사라지자 며칠 전에 만나고 온 친정엄마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렸다.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허다...
평소에는 전화통화중에 한 번 뵈러 올라가겠노라 하면 먼 길 힘들게 뭐 하러 오느냐고 마다하시더니 얼마 전에는 한숨처럼 “그래... 보고 싶구나.” 하셨다. 그 말씀에 갑자기 가슴으로 바위가 들어앉고 목젖이 뻐근해지더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엄마 보러 가리라는 다짐이 들면서 아예 날짜에 못을 박고 말았다.
“6월1일 월요일에 꼭 갈게요. 그날 가서 하룻밤 잘 거예요.”
이 말에 우리 엄마, 얼마나 마음이 좋았으면 “에구, 우리 막내딸 소리가 새소리 같구나.” 하셨을까.
약속한 날 아침, 일찌감치 전화가 왔다. 몇 시에 출발하느냐, 누구랑 오느냐, 언제쯤 도착하겠느냐, 식사는 어떻게 할 거냐 물으셨고 운전하는 중에도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덕분에 혼자 7백리 길 가는 동안이 지루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훨씬 전부터 동구 밖으로 나와 기다리셨다는 구순의 친정엄마를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아 드렸더니 이러신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우리 이쁜 딸 고생시키는구나. 미안허다... 그 먼 길을 혼자 운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니... 고맙구... 미안혀....”
그날 밤 내내 엄마는 내 기억엔 없는 일들로 미안하다 하시면서 사이사이 말씀을 잠깐씩 멈추곤 하셨다. 울음을 삼키는 엄마를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하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이고 우리 엄마, 구십 넘으신 거 맞아요? 기억력이 어쩜 그리 좋대요? 별 걸 다 기억하시고 별 게 다 미안한 우리 엄마...”
엄마는 다 그런가보다. 자식에게 잘해 준 건 기억 속에 하나도 없고 미안한 일들만 줄을 선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 짐들을 다 내려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그리고는 볼에 뽀뽀 하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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