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 주는 선물

T.S. 엘리엇은 194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자신의「황무지」라는 시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라며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했다. 한편 시인이라기보다는 수필가로 잘 알려진 금아 피천득 님은 자신의 수필「봄」에서‘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고 쓴 시인과‘사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시인을 가리켜 사치스런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어쨌건 하늘과 땅과 물이 서로 버무려져 온갖 생물들로 하여금 자신의 피부를 찢으며 소생을 시작하게 하는 때, 새순이 여린 살갗을 비집고 나오는 몸부림과 그 몸부림이 남긴 고통의 순간들, 그리고 아리고 쓰린 상처에 새 살이 차오르는 숨 가픈 시간의 연속이 바로 4월이 아닐까?

또한 세상 만물들이 겨우내 입고 있었던 두터운 겉옷을 벗어던지며 말라 삐뚤어진 피부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비로소 겨우내 죽었던 게 아니라 숨을 죽이며 살아 있었음을 깨우쳐 주고, 뽐을 내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가장 잔인한 계절이라는 4월에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는 3월 27일부터 시작된‘조성자 첫 번째 개인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달 내내 공연, 영화 상영, 전시회 등 여러 분야에서 다채로운 문예행사가 열린다.

우선 3일부터 15일까지를 기간으로 OCI미술관이 주관하는‘별별동행전’이 2전시실에서 열리는데 전시회에서는 그동안 OCI미술관의 작가 지원프로그램을 거쳐 간 미술가 중 개성이 돋보이는 18명의 현대미술 작품 30여 점이 기발한 발상으로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리고 1전시실에서는 지난 1997년 지역 여성작가들이 뜻을 모아 만든 연묵회(회장 김선우) 회원들이 저마다의 끼를 먹물에 담아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은 정기 전시회를 4월 7일부터 나흘 동안 연다. 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몰린 한국인 주부가 갖은 고통과 아픔을 견뎌내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영화‘집으로 가는 길’이 10일부터 13일까지 상영된다.

영화‘집으로 가는 길’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세상 전부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가 직접 겪은 실화를 토대로 방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작년 ‘7번방의 선물’에 이어 또 한 번 시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본다. 대공연장에서는 또, 19일에는 배순아음악학원이 대관행사로 개최하는 클래식 음악회가, 24일에는‘시인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광양시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4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장애인 나눔 콘서트가 시민들을 맞는다.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 이외수 님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예술가는 세상이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모 신문사 논설위원의 말처럼 방부제마저 썩어간다는 요즘 문화와 예술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 새 생명이 움트느라 잔인할 수밖에 없는 4월, 이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계절에 광양문화예술회관으로 발길을 옮겨 일상에 지친 영혼을 두고두고 썩지 않게 문화ㆍ예술의 향기와 색깔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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