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詩기형도

아닌 게 아니라, 기쁨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 버렸을까. 눈코뜰새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왜 항상 허기가 지는 것일까.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삶이란 맹목적인 충동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우리는 왜 항상 이미 떠나 버린 첫사랑과 돌아올 수 없는 향수에 미련을 남기는 것일까.

아니, 마음은 또 어쩌자고 원치 않는 것들만 꿈꾸게 만드는 것일까. 너무 일찍 세상에 눈을 떠버린 아이들조차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모양새다. 사랑조차 돈의 무게가 결정한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큐피트의 화살촉도 금빛일 때 더 효과가 좋다고 했겠는가. 기형도 시인 역시 너무 일찍 세상의 불온함을 깨달은 시인이다.

순백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적응하기가 두 배로 힘든 법, 그래서 시인들은 항상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게 바로 시인들이 받아야 하는 천형(天刑)이기도 하다. 시인들은 상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원죄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법이다. 지금 기형도 시인은 무책임한 탄식들이 쏟아지는 세상을 향해 절망을 노래하고 있다.

희망은 한 번도 성취되지 못한 채 여전히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라며 더 이상 희망도 찾지 말라 한다. 그렇다. 우리는 기껏해야 자본의 욕망에 길들어진 한 마리 포유류에 불과하다. 참으로 애석하지만, 우리는 모두 돈을 쫓아다니다가 끝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야 마는 존재들이다.

홍봉기 기자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