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은 슬픔을 먹고 자란다"

전순례 作 휴선(休船)

#간혹 그림을 그리다보면 대책 없는 그리움이 마음을 훑고 지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붓을 놓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감정까지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닌가 보다. 특히 요즘처럼 여기저기 꽃들이 만개할 때는 더더욱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혼자 호젓한 산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들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풀 섶에 조용히 피어있는 그 앙증맞은 꽃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것은 못된다. 유명무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이름 없는 들꽃이 얼마나 진솔한 향기를 품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산책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데 고은 시인의 짧은 시 '그 꽃' 이 또 가슴을 때리며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거짓말 좀 보태서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한참 그렇게 소리 내며 울고 말았다. 딱히 서러워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억울한 뭔가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저 연약하고 가련한 것들이 불쌍해 나도 모르게 감정 과잉현상을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아, 눈물은 참 신비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한참을 울고 났더니 세상이 그렇게 투명하고 깨끗해 보일 수가 없었다. 눈물은 마음을 닦아 내는 세척제와 같다더니 정말 그렇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산책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붓을 들고 덧칠을 시작했다. 자고로 모든 문학과 예술은 슬픔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한 때는 이 문장이 싫어 애써 회피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마음이 외로워서 그런지 몰라도 자꾸[전순례 화가]의 그림 [휴선(休船)]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주로 버려진 폐선을 즐겨 그린다.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며 그리움을 실어 날랐을 그 폐선의 쓸쓸함을 보노라면 삶의 의미까지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녀의 그림을 감상할 때 배경음악으로는 [지노프렌체스카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안성맞춤이다. 조만간에 꽃샘추위가 물러가면 봄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할 듯싶다.

김태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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