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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 아닙니다박미애 (세연 꽃그림 연구소 대표)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4.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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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보건소 치매안심센타 뇌청춘교실에는 꽃그림 천아트 수업이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행주, 다포 등에 꽃그림을 그린다. 나는 20년 넘게 붓글씨를 써서 전남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고 매, 난, 국, 죽을 그리며 화제를 쓰는 문인화도 10년 가까이 했다. 꽃 그림 천아트를 접한 지 3년 차에 취미를 뛰어넘어 강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면 행주에 튤립을 그려 놓고 그걸 보며 설거지를 하는데 행복했다. 행주는 그릇을 닦는 용도가 아니라 향기를 내뿜고 고개를 빳빳이 든 꽃이다. 새로운 꽃을 그릴 때마다 행주에 그림을 그려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 했다. 어찌 이리 이쁘냐고, 이걸 어떻게 쓰냐고 어색하게 꾸중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만큼 행복해져 보라고 더 많은 꽃을 알아가고 더 잘 그리고 싶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본인이 그리는 꽃이 제일이라 생각해 주세요. 수십 년 동안 붓질한 체본 꽃과 비교하지 마시고, 짝꿍 꽃과도 비교하지 마세요. 집에 가면 얼마나 돋보이는  지 모른 답니다. 꽃잎 하나 잎 하나 그릴 때 이야기를 만들어 주시고 정성껏 그려 보셔요. 

분명 저와 같은 행복을 느낄 겁니다’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조금만 붓질이 익숙해지면 짝꿍 꽃과 비교하고 체본 꽃과 비교하게 되면서 왜 내 꽃은 안 예쁘지요? 잎 색깔이 너무 탁하지 않은가요? 하는 분이 생긴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빈말처럼 듣는다. 그때부터 칭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말이 많아진다. 왜 이 꽃이 예쁜지 콕. 콕. 그러면서 자세하게 말을 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일인데, 존재의 이유를 대야하는 것이다. 

꽃은 취향의 문제이지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나에겐 목이 꺾여 시들어 가는 목련도 이쁘다. 꽃은 꽃봉오리부터 활짝 핀 꽃, 휘어진 꽃, 뒷태를 보여주는 꽃, 경쟁에 눌려 비틀어져 피는 꽃, 형태를 갖추지 못한 꽃잎 개수도 있다. 잎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강사에게 수강생들은 자식과 마찬가지다. 내 자식이 그린 그림이 안 예쁜 적이 있던가? 그리다가 만 그림도 이쁘다. 왜 마무리를 못했을까? 라며 아이를 관찰하던 시간도 그림의 연장이다. 

오늘처럼 새벽부터 비가 오는 날에도 9시부터 보건소 수업을 기다리는 언니들, 오빠도 한 분 계신다. 8남매의 7번째인 나에겐 하늘나라에 먼저 간 74세 큰 오빠가 있다. 그러니 뇌청춘교실의 65세 어르신들은 나에게 언니며 오빠다. 수강생 어르신께 호칭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때 오빠, 언니로 불러도 좋다고 했다. 한 분뿐인 오빠께선 몇 주간 나와 눈을 못 맞추시긴 했다. 어린 강사가 부르는 호칭이 어색했나 보다. 이런 분들이 그림을 그리신다. 그것도 꽃 그림을. “언니, 오빠요. 오늘 그린 여뀌 꽃. 진짜 예쁩니다. 정말 빈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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