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해 다시 백두산이 열렸다.

애국가 1절 첫 번째 소절에 나오는 백두산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중국행 비행기를 탄다.

중국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현실에 여행자들의 아쉬움은 통일에 대한 연민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으로,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흰머리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 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화산활동을 멈춘 백두산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고 한다. 1983년, 등소평이 백두산을 관광지로 개발했다.

백두산의 전체 면적 중 3분의 1은 중국 영토, 3분의 2는 북한 영토로, 하늘 연못 ‘천지’의 전체 둘레는 14km, 수심은 최대 380미터에 이른다.

접근 방향은 동파, 서파, 남파, 북파 등 네 방향이다.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서파와, 산문 매표소에서 지프를 타고 구불구불 경사진 길을 20여분 달리면 30미터 남짓 바로 아래에 도착하는 북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파에 비해 북파는 그리 힘들지 않지만 천지를 한눈에 조망하기엔 서파가 좋다.

맨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1442개의 계단을 사람을 태우고 오르내리는 가마꾼을 보니 세계 그 어느 곳이든 ‘먹고 사는 일’은 숭고하다는 생각에 경외심마저 든다.

천지를 오르기 전 최광화 가이드는 일행들의 눈을 감게 한 후 제목 없는 ‘詩 한편’을 낭송했다. 아마도 가이드의 자작시인 듯 했다.

백번 와서 두 번 제대로 보고 간다는 천지, 천지를 못 보면 사람만 많은 사람 천지라고, 그만큼 맑고 선명한 천지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과 함께...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어/내라고 니 얼굴 안보고 가려 하건만/널 보고픈 그리움을/장백송 가지에 새소리로 놓고 간다/또 다시 니 앞에 나선 들/그때면 니 얼굴 보여주겠니?/아니다. 아니다/북경 심양 연길로 돌아 온 것이/니 비위에 거슬렸다면/다음에는 개성 원산 청진으로 돌아오마/그때면 니 고운 얼굴 니 예쁜 몸매를 얼싸안고/아니면 외로운 날/새 한 마리가 니 곁을 스치거든/그게 님이라 생각하고 꽃처럼 반겨라/그게 님이라 생각하고 꽃처럼 반겨라”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체육 교사를 하다 직업을 바꾼, 20여년째 베테랑 현지가이드 덕에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이번 백두산 여행은 수월했다.

할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까지도 모택동 공산당 문화혁명시절 수감생활을 했다고,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때 남한에 두고 온 여동생과 만난 이야기 등 가이드는 연변의 역사와 함께 가족사를 설명하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 두만강 유역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고 놀았다는 민족혼이 살아있는 조선족 3세다.

힘겹게 느린 걸음으로 천지에 도착한 일행들에게 그 감동의 크기는 남달랐다.

그들은 애국가라도 목청껏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직선으로 올 수 있는 곳을 중국으로 돌아왔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접적인 분단의 아픔을 가진 이산가족이 아니어도, 깊고 푸른 천지를 마주한 대한민국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백두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삼백년을 훌쩍 넘긴 빈약한 자작나무 원시림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척박한 땅에서는 두메양귀비 같은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광양읍 세진관광을 통해 모집된 시민들과 얼떨결에 함께 한 백두산 여행은 맑고 투명한 쪽빛 ‘천지’를 지척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이 따라 주었다.

백두산 탐방에 앞서 북한 남양시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도문 북한 접경지대 두만강변과 용정 명동촌 윤동주·송몽규 생가에도 들렀다.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는 해란강, 일송정 등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가곡 선구자를 가슴으로 노래했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폭포가 되어 송화강으로 흘러간다는 높이 68미터 북파의 장백폭포, 용암이 흐르며 생겨난 서파의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금강대협곡 등 화산이 만든 황홀하고 웅장한 대륙의 자연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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