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 옥상 방수 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 안 게시판에 붙었다.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양해해달라는 시공사 측 안내문이었다. 어림잡아 공사 기간이 한 달 남짓이었다. 옥상뿐 아니라 사택이 지어진 지 오래돼 눈에 띄게 거슬리는 것이 생겨났다.

창문 방충망은 아귀가 맞지 않아 소리를 내고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졌다. 베란다 하수도 배관 거름망 사이 바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깎이고 패였다. 사람 몸이 늙어가듯 건물도 시간의 무게에 짓눌린 흔적이 주름살처럼 선명해졌다. 옆지기와 나는 안내문을 보며 이사 갈 때 되니 수리한다며 빨리 나가야겠다고 농담했다.

내가 사는 곳은 꼭대기 층이다. 공사가 시작되자 옥상을 타고 내려오는 굉음은 요란했다. 밤 근무를 마치고 자는 옆지기의 단잠을 깨우기가 여러 날이었다. 무심코 움직이다가 갑자기 진동하는 천장 소리에 놀라기도 부지기수였다. 바닥이 일어난 옥상을 면 갈이 하고 더께를 제거하려 고압 세척기로 물청소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일이 벌어진 아침은 방수 공사와 더불어 단수가 되는 날이었다. 단수되기 전 화장실 욕조에 미리 물을 받아 놓았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나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단수되기 전 욕조에 물을 받고 수도꼭지를 분명 잠갔다. 나는 수도꼭지를 갈무리하지 않아 물이 넘치나 싶어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가다 거실 오른쪽 구석에 놓인 에어컨 호스 구멍에서 쏟아지는 검은색 물을 보고 기겁했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옥상 천장으로 연결된 배수관 위쪽이 벌어져 옥상이 드러나 보였다. 물이 거기서부터 쏟아지고 있었다. 물은 에어컨 바닥을 채우고 탁자를 지나 거실 한가운데로 혀를 날름거렸다.

나는 물이야, 소리 질렀다. 내 소리에 옆지기와 휴가 나온 아들이 거실로 나왔다. 옆지기는 두꺼비집을 찾았다. 전기부터 내려야 했다.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넣었다.

잠시 후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옥상에서 공사 감독이 내려왔다. 뭐라고 불만을 터뜨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부아가 치밀지만 급한 물부터 막아야 했다. 내 볼멘소리는 고여가는 물과 함께 구르다 낮아졌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이 몰려와 물건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물을 퍼냈다. 아들도 얇은 플라스틱 도마로 물을 현관 쪽으로 밀어냈다. 누구 할 것 없이 바짓단을 올리고 맨발로 물을 퍼내고 닦았다.

아들이 휴가 온 게 아니라 대민지원 나온 거라며 구시렁대는 바람에 나는 웃고 말았다. 맞네, 대민지원 확실하게 한다고. 여러 사람의 협력은 이겨내지 못할 게 없었다. 물난리는 빠르게 수습됐다. 붙박이 책장은 옥상 계단 한편에 거꾸로 세워 말렸다.

나는 거실 위쪽에 있던 세월 먹은 흙 소파까지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당근에 내놓아 거래가 예약된 소파였다. 가끔 사용하다 몇 년 코드를 뽑아뒀다. 물 묻은 네 다리를 닦고 코드를 꽂았다. 시간이 지나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AS를 불렀다. 기사분이 열선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30만 원에 내놨는데 수리비만 20이 든단다. 확인하지 못한 내 실수였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소파를 산다는 사람에게 톡을 남겼다. 나눔 할게요. 바닥에 차오른 물이 내 눈물로 나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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