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는 가을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위력을 과시하고 많은 피해와 상처의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올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고, 더위를 씻어내고자 몸부림치며 여름을 보내주는 길목에 예기치 못한 태풍의 흔적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YWCA 희망을 만듭니다” 2016년 8월 한국YWCA 전국회원(전국52개지역, 회원:10만명)대회에서 채택된 슬로건이다. 그런데 가슴이 너무 아려온다.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의 희망이라는 우리의 미래라는 아이를~~그 아이가 물었다. 아는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또 물었다. 신이 살아 있는지를.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끝이 났다고 희망이 없다며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어깨를 들썩이는 소리 없는 흐느낌이 내 감정을 절제할 수 없게 만들고 가슴 저미는 한탄이 눈물로 흘러나왔다. 누군가 당신에게 성폭력 피해를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들을 것인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말해줘서 고맙다”, 씩씩하게 살아줘서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성과 관련된 가부장적 고정관념과 순결이데올로기의 왜곡된 가치가 10대 소녀의 설렘에 성폭력 피해를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의 대못을 박아 놓았다. 

성폭력은 근절되어야 하는 범죄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여하사 성추행 신고를 받은 대대장은 “ 대대를 위해 그냥 넘어가라. (부대를) 와해시켜가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뭔지 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한겨레 2016.10.10.) 또 유명 연예인은 여자친구와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 했다. 여성이 촬영을 능동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을 알고도 거부하지 않아 동의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힘의 차이를 이용한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폭력에 있어 상대의 동의가 중요한 작용을 하나 침묵은 동의가 아니고, 심신 미약 등 판단력 저하 상태에서의 동의나 협박, 강요 등이 포함된 동의는 동의가 아니다.

그럼 한 번 생각을 점검해 보자.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호텔에 가자고 했을 때 여성이 갔다면, 여성은 성관계를 동의한 것인가?”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했을 때 여자친구가 가만히 있었다면 더 깊은 관계를 해도 괜찮은가?”

그럼 성폭력을 당한 것은 순결을 잃은 것인가? 여전히 잔재해 있는 순결이데올로기는 오늘도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에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 건 아닌지 우리 생각을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조두순 사건을 견뎌낸 성폭력피해 경험자의 아버지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아이라고 기억되기 보다는 일상을 잘 이겨내고 있는 씩씩한 아이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살다보면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는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라고. 우리가 매일 대면하는 사람들은 서로 배려하고 책임지고 연대하면서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만들어갈 사람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희망의 도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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