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 골목에 작은 꽃집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많은 꽃들과 이쁘게 만들어 놓은 꽃꽂이를 보게 된다.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장 진한 색깔을 가진 꽃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주변에 늘어선 다른 꽃들과 배경을 이루고 있는 나뭇잎사귀들과 여러 가지 소재들이 눈에 보인다.

처음에 꽃꽂이를 볼 때는 꽃을 꽂아 놓았으니 당연히 예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것만은 아니다. 물론 한 송이 꽃을 바라보거나 아무렇게 꽃 한 묶음 항아리에 꽂아 놓아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내가 꽃꽂이에서 보는 아름다움은 꽃이 지닌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한 종류의 꽃이나 혹은 여러 종류의 꽃이라도 어울리게 꽂으면, 서로의 아름다움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된다. 자연화와 꽃꽂이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꽃꽂이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지 예쁜 꽃만이 아니다. 거기에 소용되는 여러 가지 색을 가진 꽃들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푸른 잎사귀들, 때로는 나뭇가지나 열매, 그리고 꽃을 담아내는 수반까지 모두가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려서 아름다운 꽃꽂이로 탄생되고, 보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우리의 음식에도 그런 어울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비빔밥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그저 식은 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 한 수저 넣고 비비기만 해도 한 끼 식사로 꿀맛이기도 하다. 진간장에 참기름이나 계란과 콩나물이 들어가면 최고다. 하지만 여러 채소와 나물, 그리고 약간의 맛깔스런 양념들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빔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재료의 어울림이다. 서로 다른 나물들과 양념들이 한데 어울려 잘 버무려져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어떤 한 재료의 맛이 너무 강하거나 밥알과 잘 섞이지 않으면 비빔밥의 그 오묘한 맛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솜씨 좋은 요리사는 재료에 따라 적당히 데치거나 삶아서 서로 다른 재료들이 어울리게 하고, 여러 가지 양념들의 양을 잘 계산하여 가장 맛깔스런 양념장을 만들어 낸다. 이 세상의 것들은 대부분 어울림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배가 시키고,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아마 창조주가 인간을 만드시고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단지 인간의 모습이 예뻐서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만물과 어울린 인간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느새 인간들은 어울림의 미학을 깨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만 내세우려고 한다. 자신을 돋보이려고 남을 짓밟고, 자신의 그림자 아래 다른 사람을 가두려 한다. 인간들은 자신만을 위해 서슴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고, 이기적인 생각과 생활방식으로 세상을 점점 어지럽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을 떼어 놓아야 아름다움이 지켜지고, 이웃과 이웃을 떼어 놓아야 평화가 이루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떼어놓고, 자식과 아비를, 형과 아우를 떼어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앞서 말한 ‘참 좋았다’라는 세상은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아름답게 장식된 꽃꽂이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서로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고, 맛있는 비빔밥처럼 서로를 희생하며 버무려질 때, 인생은 참으로 멋있는 삶이 되어질 것이다. 집 베란다에 있는 화분을 잠시 바라보았다. 조금 길어 보이는 꽃 한 송이를 빼어 가위로 조금 자르고, 뒤에 누워버린 나무 잎사귀를 세우고는 지그시 바라봤다. 이내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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