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詩/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시인은 다른사람의 울음을 대신 울어 주는 사람

이 시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시인은 다른 사람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시인들의 시가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지요? 사람이란 밥만 먹고는 살수 없듯이 일상적인 언어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겠는지요.

이런 말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2주 전에 세상을 뜬 스티븐 잡스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잡스처럼 시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늘 곁에 블레이크 시집을 두고 수시로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는 군요. 이쯤 되면 귀가 솔깃해지면서 시를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길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스티브 잡스'는 '詩티브 잡스'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지 않겠는지요.

아니, 요즘 CEO들 중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읽고 있다는 군요. 시집 속에서 창조성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하긴 퇴근하고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면서 푸념을 쏟아 놓은 것도 어쩌면 당신만이 쓰는 삶의 서정시가 아니겠는지요. 물론 삶의 서정시는 멋진 단어로만 채우는 것은 아닐 테구요.

뭐라고 할까, 그렇지요. 눈물, 고독, 상처는 다 그 나름대로 당신 삶의 행간을 채우는 서정시의 재료들인 셈이지요. 요즘 곳곳에 구절초가 피었더군요. 가을이 오는 길목에는 늘 이렇듯 수줍은 구절초가 먼저 가을을 알려주고 있군요. 참, 구절초(九節草)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구일초(九日草) 또는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더군요.

구절초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이름이 참 슬프지요? 어쩌면 11월, 모든 꽃이 꺾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구절초가 스러지면 비로소 본격적인 가을이 오듯이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 인생도 곧 스러지겠지요? 그러기 때문에 상처를 받더라도 겁내지 말고 사랑도 해야 하는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