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기다렸다 詩 함순례

산허리에 구름이 몰려 있다

알 수 없지만

내가 가고 있으니 구름이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고등어처럼 푸릇했으나 파닥거리지는 않는다

추녀에 매달려 울던 빗방울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저녁 다섯 시

점점 켜지는 불빛들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 편안하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방점을 찍는다 그 옆에 사랑은 세숫비누 같아서

닳고 닳아지면 뭉치고 뭉쳐

빨래비누로 쓰는 것이다,라고 적어놓는다

저 구름을 인생이라 치면

죽지 않고 반을 건너왔으니

열길 사람 속으로 흘러들 수 있겠다,고 쓴다

마흔, 잘 오셨다

어른 노릇하기도, 그렇다고 청춘일 수도 없는 나이

40대란 유혹은 많고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을 나이다. 아니,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 지지 않을 나이다. 당신도 그런가?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불렀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유혹이 많다는 뜻도 되리라. 어떤 시인은 '불혹'은 일종의 '부록'이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었다. 내 마흔도 그랬던 거 같다.

사실 40대는 참으로 어중간한 나이기도 하다. 어른 노릇하기도, 그렇다고 청춘일 수도 없는 나이가 아닌가. 정말 애매모호한 나이가 40대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직 내 피부는 이렇게 탱탱하다고 의식적으로 주문을 걸어보지만 성 호르몬이 줄어들고 눈가에 잡힌 잔주름을 보노라면 그런 주문은 금방 깨지고 만다.

물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씩씩한 척 허풍을 떨어보기도 하지만, 혼자 쓸쓸한 밤길을 걷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와 맥이 탁 풀린다. 고정희 시인은 사십대라는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과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시기라고 했다.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당신의 사십대도 그렇게 저물어 갈 것이다. 하지만 함순례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저 구름을 인생이라 치면/ 죽지 않고 반을 건너왔으니/ 열길 사람 속으로 흘러들 수 있겠다,고 쓴다/ 마흔, 잘 오셨다' /홍봉기 기자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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