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유럽중심주의 세계사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세계 전체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구하고 교육하려는 흐름이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의 세계사는 과거를 볼 때 국가나 특정 문명의 역사보다 더 큰 규모로 바라보려고 한다. ‘빅 히스토리’는 이러한 세계사에서 더 나아가 모든 역사 중에서 가장 큰 우주의 과거까지 다루려고 한다. 이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빅 히스토리는 인간의 역사를 지구적 관점뿐만 아니라 우주적 관점까지 포함해서 보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역사를 통합적이고 학제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 주변에 우주를 세우는 대신에 인간이 방대한 우주팽창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더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빅 히스토리는 기존의 역사학이 감히 접근하기 어려웠던 우주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를 과학과 사회과학과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빅 히스토리의 대형 연구 프로젝트들도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인 에릭 체이슨은 지구로의 에너지 유입과 유기체나 인간같은 복합형태(complexity)의 출현 사이 상호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학제적 연구가 필요다.
그런데 이러한 빅 히스토리의 대규모 프로젝트의 연구 성과들을 바로 역사학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연구 주제 자체가 방대하고, 이 연구 주제를 소화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나 학제간 연구 인력도 거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 히스토리의 연구성과와 역사서술 현장 사이에는 상당 기간, 간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본다. 이 점이 빅 히스토리가 연구가 아닌 교육에서부터 시작된 원인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리스천의 빅 히스토리는 인류사 전반에 대해 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연과학의 성과를 역사학에 접목하는 것은 지구사와 인류사를 과학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역사학과 인류사의 독자영역을 지구사나 우주사같은 방대한 영역의 작은 부분으로 해소시켜버릴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빅 히스토리는 인류사를 넘는 지구사, 지구사를 넘는 우주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새로운 종류의 목적론이나 종말론으로 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구사나 우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인류사를 보다 잘 파악하여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역사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우리 인류는 인류의 관점에서 인류를 위해서 인류사와 지구사를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학은 한편으로 빅 히스토리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류사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데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빅 히스토리는 문제제기와 관점도 크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크다. 빅 히스토리를 만나면 모든 게 ‘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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