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요로코롬 써야 지대로 쓰는 거여!”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 막상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지만 중마동 노인복지회관 한글반은 배움의 열기로 후끈하다. 혹시 수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살짝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들이 한글 사랑에 푹 빠져 정신이 없다.

“여름에는 빙과류를 많이 먹습니다.” 한글반 선생님을 따라 그대로 복창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어머니들, 빙과류가 무슨 뜻이지요?” “아, 그 머시냐. 얼릉 말이 안 나오네” “선상님, 아이스크림을 말하는 것 아닌가베요?” 여기저기서 나도 알고 있다는 듯이 수근 거린다. “할머니, 한글을 배우니까 뭐가 좋으신가요?” “아, 좋은 게 어디 한 두 가징가” “다 좋아부러” 여기저기 까르르 숨넘어가는 소리가 마치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들 같다.

“아니, 우리 할머니들께서 한글을 배워 혹시 이곳에 드나드시는 할아버지들에게 몰래 연애편지를 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 걱정말어. 여그 있는 영감들은 통 쓸만한 게 없어” 다시 배꼽을 잡고 한 바탕 난리 법석을 피운다.

그러나 눈동자들은 보통 빛나는 게 아니다. 선생님이 단어를 설명할 때마다 꼬박꼬박 대답하는 반장 할머니가 예사롭지 않다. “할머니, 우리 세대는 비록 지식은 많지만, 지혜는 부족해요. 오히려 지혜는 할머니들이 훨씬 많아요.” 이 말에 기가 살아나신 할머니들이 중구난방으로 말을 쏟아 놓는다.

“하기는, 요즘 것들은 장을 담을 줄 아나 된장을 담글 줄 아나, 뭐 하나 지 손으로 하는 게 없당께로.”“아, 뭐시나 얼매 전에 젓갈을 담그는디 젓갈 물 하나 지대로 양을 못 맞추더구만.” 할머니들은 다시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받아쓴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습니다.” 이 때 만큼은 정말 진지하다.

“아, 여그 작대기 하나 더 그야제.” “아녀, 이게 맞당깨로 그러네” “아니랑깨 자꾸 그러네.” 두 할머니가 티격태격 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시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며 스스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렇게 늦게라도 배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할머니, 이제는 초등학교 1학년 손자도 가르칠 수 있겠네요” “하믄, 그럴 수 있제.” 이 말이 우스웠는지 모두 또 한 바탕 웃는다. “혹시 산수와 영어도 배우나요?” “아, 영어는 쫌 있다가 배울꺼여”

“영어는 에럽다는디 잘 될랑가 몰라” “할머니 영어로 어머니를 ‘머더'라고 하는데, 아마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해 달라는 대로 뭐든지 다 해주니까 '머더'인가 봐요." “응 그런 것 같애" 할머니들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배움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다. 현재 가장 연세가 많은 할머니가 올해로 85세라고 한다.

머리에는 하얀 세월의 꽃이 피었지만, 연필을 쥐고 있는 모습은 전혀 세월을 의식할 수 없었다.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할머니들은 이제 배운 한글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편지와 일기를 써서 게시판에 붙여 두었다. 비록 문장이 어긋나고 받침이 조금은 틀려도 가슴에 담긴 한과 서러움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글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공자님도 이렇게 말했다.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배우는 것만 못하더라고." 험한 가시밭 인생을 걸어오신 할머니들에게 한글은 아픔과 한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아니었을까. 취재를 마치고 사진을 촬영한다고 하자, 할머니들을 센스를 발휘해 “선생님, 사랑해요!" 와 “선생님, 고마워요!"를 연발하는 게 아닌가. 아마 한글 중급반 할머니들이 요즘 학생이었다면 모두 한가닥은 하고도 충분히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문을 닫고 나오는 등 뒤로 선생님을 따라 글 읽는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 왔다.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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