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사건이 터졌다. 이런 일에 우연이라는 말이 맞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말 우연히 내 무릎을 다치게 되었다. 연골이 상하고, 붓고 염증이 심한 채, 물이 찼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푸욱 쉬라고, 그러지 않으면 고질병이 될 거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서 조금만 무얼 해도, 조금만 걸어도, 더 붓고 아파져 무릎을 굽힐 수도 없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거의 일 년이나 같은 일과로 복작대던 우리 집은 폭풍 같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공주라기엔 너무 늙은 내가 다리를 죽 뻗고 앉아 쉬고 있고, 내가 점령해 왔던 조리대를 남편이 차지했다. 설거지를 싫어하던 아들도, 서툴던 막내도 산더미같은 설거지를 척척 해낸다. 식구가 많다는 건 참 좋다. 짐이 생기면 같이 들고, 구멍이 생기면 같이 메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무릎이 낫지 않았다. 슬슬 먹고 싶은 게 생겼다. 머위 나물, 취나물, 파래무침, 그런 일상에서 만들어 먹던 반찬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숨 쉬듯 익숙했던 것들이 별처럼 보인다.
그리고 특별한 동화책 한 권이 떠올랐다.

내가 쓴 《하늘이 낳은 아이들》과 함께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 추천도서에 오른  인물 동화, 《파랑새 시인, 한하운》(2020,한영미 저,산하)이다.
그 동화 속에는 우리가 지금 암울하다고 느끼는 제한된 수준의 일상을 그토록 꿈꾸었던 한 남자가 나온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던 사람”

고통과 차별 속에 외롭게 살면서도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며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지켰던 시인, 한하운이다. 코로나19 환자도 격리되고, 주홍글씨 같은 낙인이 찍혀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한하운은 한센병 환자였다. 그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망가져 가는 외모로 인해 문둥이라고 불리며 사람으로 헤아림 받지 못했다. 보기만 해도 병이 옮을 듯 싫어해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함께 살 수도 없었다.

한영미 작가는 그런 온갖 고통 속에서도 “시인 한하운의 가슴속에는 더없이 맑고 깨끗한 우물물이 출렁였고, 그곳에서 한 글자 한 글자 퍼올렸기에 그의 시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 잘못 없이 손가락 질 받고 떠돌며 외로워야 했고, 육체적 고통까지 감수해야 했지만, 그런 자신도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고 믿으며 고통을 시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한센병 음성 판정을 받는다.
그렇다고 한센병에 걸린 적이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간절히 꿈꿨던 삶, 남들과 같은 한 사람으로서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살게 된 것을 행복해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것, 일상을 그는 “자유”라고 표현했다. 그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삶이다.

나는 이제야 내가 만들어 먹던 음식이 귀한 음식인 걸 알았다.
더는 잃어버리지 않아도 지금 누리는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2021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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