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8개의 행성은 엄청나게 큰 태양의 인력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태양주위를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 때문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인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그 정확한 거리의 지점으로 이루어진 궤도(軌道)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고 있다. 그 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에게 가장 적당한 거리다. 그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궤도 밖으로 벗어나거나 서로 충돌하여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 여덟 개의 행성 중 지구가 우리의 세상이다. 이 지구에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가 수성이나 금성처럼 너무 가깝지도, 화성~해왕성처럼 너무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 거리가 달라질 때 여름이 되기도 하고 겨울이 되기도 하지만 지구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차이가 크지는 않다. 이런 자연의 질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참사는 이런 ‘불가근불가원’의 지혜를 무시했을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전직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몰락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불가근불가원은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하거나 지나치게 멀리 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와 배려가 필요한 이유도 이런 적절한 거리 유지의 필요성 때문이다. 

가족과 연인처럼 매우 친밀한 사이에서 유지될 수 있는 거리는 친구나 가까운 지인은 물론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정도의 사이나, 전혀 모르는 타인과 유지될 수 있는 거리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런 거리의 차이를 ‘밀접한 거리(45㎝ 이내)’, ‘개인적 거리(45㎝-120㎝)', ‘사회적 거리(120-360㎝ 정도)’, ‘공적 거리(360㎝ 이상)' 등으로 분류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이런 거리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절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들 중 하나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 거리를 함부로 좁히거나 넓히는 예의바르지 못한 행동이다.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사람 사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며 그 사이를 잘 유지해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 그 사이를 좋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은 친밀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일들, 예컨대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에 대해서도 이 불가근불가원’의 지혜를 발휘해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더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세 계절 동안 무성했던 잎새들 아낌없이 내려놓고 알몸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11월의 나무들”(정연복, ‘11월의 나무들’)처럼 의연하고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다가온다. 뜨거운 난로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난로에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게 되고 너무 멀어지면 온기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서로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법,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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