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오는 밤의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서울의 하늘에서는 별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보다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별 대신 나의 하루를 흘려넣고 눈에 담는다.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을 곱씹어보며 걷는 나날들이 늘어나니 하루에 대한 아쉬움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게 열심히 살았지. 모자랄 것 없이 알차게 살았지. 무언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신경이 곤두서 피로감에 젖는 순간도 줄어들었다.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많은 것이 변화했다.

태어난 이래로 처음으로 논문을 써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나는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은 단 한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관련 책을 찾아 읽어본 것도,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무엇 때문에 구토감을 느꼈을지, 왜 그러한 제목을 붙였는지, 나는 이 책을 소화하고 어떤 양분을 흡수하고 어떻게 자라날지. 작가에 관하여 찾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책을 사 하루에 50페이지씩 분량을 정해 놓고 읽었다. 처음에는 내용 이해는 커녕 주인공의 인물 관계 파악도 버거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권을 열흘 동안 한 번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어본 적도 처음이었다. 어떠한 배경 지식 없이 그저 맞부딪혀보기. 그것도 ‘어렵다기로 소문난’ 사르트르의 책을. 그러나 나는 이 어려움이 좋았다. 처음으로 내가 찾아서 부딪힌 나의 난관이자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논문 쓰기도 솔직히 뒷전이었다. 한 달 반 정도 주어진 시간에서 미리 책을 읽어보니 특정 목표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구토를 총 세 번 읽었다. 내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세 번 읽기 전까지 나는 펜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한 번 읽을 때에는 열흘이 걸렸지만 두 번 읽을 때에는 삼일이 걸렸고, 마지막으로 읽을 때는 하루만에 다 읽었다. 그 다음에 작가의 생애에 관한 서적을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그의 철학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영향을 받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도 발췌해 읽어 보았다. 효율적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보통 먼저 작가의 생애와 저작 배경을 살펴보고 책을 부분적으로 읽는 것이 보통의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적을 가진 채 읽고 싶지 않았다. 전에는 어려워 그냥 넘긴 구절이라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나의 힘으로 추측하고 사유하고 싶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나는 ‘이번에도’ 해 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열과 성을 다하여 내 힘으로 소화하기. 머리가 차게 식고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을 반복해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해하기. 내가 이해한 것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 한 달 동안 읽은 책만 여덟 권정도 읽었다. 내겐 꽤나 많은 양의 독서였다. 치열하게, 내 생각을 투영해보고, 끙끙거리며 고민해보기도 한 필사적인 독서. 논문 작성은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나의 생각을 서술해 본 적이 적었으므로 글 또한 서툰 점이 다분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행복했다. 검토를 하면서 잦은 실수에 헛웃음이 나왔지만서도 기뻤다.

오히려 내 실수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간절하게 독서에 매달렸으나,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나의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내 행위에 ‘~ 하기 위해서 ~을 한다’라는 목적의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다. 그것이 깨져버리면 하지 않을 가능성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고 싶지 않다. 행복하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는 순간은 얼마나 비참할지.

그저 내가 치열하게 매달릴 수 있는 것을 찾아 내 삶을 쏟아붓고 싶다. 가끔 넘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앞날은 내다볼 수 없기에 불안하며, 권리가 있기에 따르는 책임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유는 인간의 형벌’이라는 표현이 머릿속 한 켠에 스친다. 이를 거부하고 내 목에 목줄을 채울 것인지, 불분명한 가능성이 가득한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을지. 나는 도망치지 않고 싶다. ‘당최 알 수가 없는’ 나의 미래를 향해 뛰어들고 싶다. 벽에 부딪히며 그것을 허물고 이번에도 성장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