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올까 싶었던 올해의 봄도 흘러 가을이 만연해졌다. 아침에는 약간 쌀쌀하고 점심에는 덥고 밤에는 조금 춥다. 하루에 사 계절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요즘만큼 계절의 순환이 만연히 체감된 적이 없었다. 눈이 떠졌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나의 삶에서도 반복되는 순환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나의 글에 관한 발표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하여 어느덧 나의 감정의 해소이자 활력이 된 글쓰기. 원래 주제는 ‘나의 시’에 관하여 다뤄야 했지만 굳이 시만을 써야겠다고 목표하고 살아오진 않았다. 그래서 나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교수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으려면, 알아야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꿈을 품고 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 근원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살고 싶어하는 이유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은 이유. 살고 싶어할 ‘수밖에’ 없던 이유들. 나의 현재는 과거의 농축된 파편들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의 삶에서 ‘그냥’이라는 단어가 흔치 않던 원인도 이해가 갔다.

예전부터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면, 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강하게 묻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제법 들어왔다. 종종 헤매던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 적이 없었던 나는 어떻게 절제해야하는지 몰랐다. 가다듬는 법을 배우기에는 나의 격렬한 감정을 감당할 수 없던 어린 나였기에. 지금도 글을 적어 놓았던 곳을 뒤적여 보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의 오염되지 않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어렵지만 ‘어린 날의 나’다운 것들이. 누군가는 흑역사라 지칭하며 덮어버릴 수도, 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때로 생각이 나면 들여다 본다. 부끄러움도 느끼고 그때와 달라진 내 자신을 마주한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더 이상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구나. 나는 많이 컸구나.

요즘은 글을 쓸 때가 잦다. 내가 쓴 글을 읽어주고 몇 마디 남겨주는 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들도 늘었다. 일관되게 듣는 말이 있다. 나의 문장은 지나치게 길지 않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추상적이거나 난해한 표현도 많지 않고 상황 묘사가 탁월하다는 과분한 칭찬도 조금씩이지만 듣는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말들이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순간들에서 살아간다. 속에 있다. 

곧 찾아올 올해의 겨울. 곧 지나갈 올해의 가을. 또다시 찾아올 내 생애의 계절들. 또 다시 찾아올 내 생애의 추억들. 추억이 되어 버릴 앞으로의 순간들. 그 모든 때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뭐 하나 완벽한 거 없는 부분들일지라도 끌어안은 나로서의 빛. 나는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던져진 존재로서의 나. 도화지를 채워갈 나. 펜의 잉크가 말라버려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질주할 나. 허락된 순간동안 나는 마음껏 달리고 싶다. 가끔 주저앉고, 쉬어가더라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영광을 맞이하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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