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길었던 여름 방학 초기부터, 아버지는 송기득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어느 날은 그 말과 함께 책을 한 권 주셨는데, 종류가 나에게는 생소한 부류의 책이었다. ‘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책이 손에 쉽게 잡히지가 않아,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타야 할 일이 있을 때 처음 읽었다.

읽는 동안 눈에 남던 단어들이 몇 있었다. 그 중에 자유가 있었다. 나는 하루하루에 순응하며 내 할 일을 찾아 묵묵히 했던, 짧은 삶을 살아왔었다. 내 현실로부터,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던걸까? 내가 그토록 나를 변화 시키고자 애써왔던 것들은 결국 기존의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욕구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을까. 

대학에 가서 여러 동기들과 얕고 깊은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한 친구가 자기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철학을 하는 목적은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고 고뇌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시야에 갇혀버릴 것 같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짐,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화두. 무전여행을 결심했던 시절의 선생님과 내 친구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는 어떤 의미였을까.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때가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부터 흘러나오던 잔잔한 향은 선생님을 닮았다. 편안함이 나를 감싸며 생각의 터를 향해 반갑게 발걸음하도록 도왔다.

선생님은 내게 지성소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옷깃을 여밀 수 있도록 쉬어갈 수 있는, 하나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못할 나의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도전이라고 답했다. 목표가, 간절한 것이 나의 변화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이 대답 또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태이다. 신발을 신고 나가면서 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 걸까. 지금껏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말하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란다’의 궁극적 청자이기도 한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까. 

1년 전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삶을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살지 궁금하다, 라는 말을 제법 들었다. 나도 궁금하다. 무수한 조건을 맞이하겠다만, 그럼에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경험의 각인. 누군가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는 망각의 때가 되면 잊힌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 인해 전과 후의 내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 순간을 지금도 나는 몇몇 기억한다. 나는 바라지 않았으나 바라고 살았다. 얻은 것이 있으며 잃은 것도 많다. 온 마음을 바쳤던 적이 있으며 퍼석거리듯 메마른 공허를 느꼈다.

어린 나는 감히 말한다. 내가 행복해하며 슬퍼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다. 가끔의 밤에 찾아오는 고독과 흔들림을 버텨내는 순간들에서도 끝내 어두워지지 않고 살고 싶다. ‘잡’생각들이 많아 힘들겠다라는 걱정을 종종 듣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조차도 감당하기 벅찰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겪고 난 후의 아침에서, 지난 밤들을 털어내 버리고 새로운 햇살을 맞는다. 날마다의 반복이지만 조각들은 하나같이 같은 것이 없다. 그 모든 파편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편의 수필을 쓰다가 담임 선생님께 울며 한 말이 있다. ‘선생님, 저는 단 한번이라도 온실 속 화초로 살아보고 싶어요. 그러면 제가 겪었던 것들을 평생 모르고 살 수 있잖아요.’ 선생님은, 그저. ‘야생화는 온실 속 화초가 품지 않은 향을 가지고 있단다.’ 한 마디를 해 주셨던 듯하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도 나의 향이 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융합된, 지나온 순간들을 품고 사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갈 것인가. 나의 자유란.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