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만의 더위라고 했다. 사람들의 호흡은 가빠졌고 몸은 축축 늘어졌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식물성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더위에도 식물들은 더 꿋꿋한 자세로 버티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자연의 질서와 순리에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집에만 있는 다고해서 기온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땐 이열치열 작전으로 사진촬영을 나가는 게 최고다. 그러잖아도 함안 강주마을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사람들의 눈과 발길을 붙들고 있다는데, 일단 카메라부터 챙기자. 그러면 자동차와 발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이치가 대부분 그렇다. 뭐든지 시작해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법이고 또 예기치 않았던 행운을 맞이하기도 하는 법이다. 

    해바리기꽃이 피었습니다!

해바라기 꽃말은 숭배, 그리움, 기다림 등이라고 하는데 해바라기꽃 그림이나 사진을 집안에 걸어두면 행운과 부가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흐도 해바라기를 그렸는지 모르겠으나, 고흐는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강주마을의 해바라기 축제가 특히 돋보이는 것은 순수한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수 십 만 그루의 해바라기가 군락을 이루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내 세포는 가볍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내 것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하는 것이다, ‘찰칵, 찰칵’ 하는 셔터 소리는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온다. 맞다. 사진 중독 증세가 다시 도지는 것이다. 하긴 고수가 되었다는 사람치고 중독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터.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져도 아무렇지 않다. 이럴 때 땀은 향수가 된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런 글을 남겼다. "감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지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지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직관할 수 없으며, 또한 감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다. 인식이란 감성과 지성의 합일이다. 이것들의 깊이 없이 어찌 참되게 직관하고 사유할 수 있을까."

그렇다. 대상을 보고 느끼는 것은 감성이지만 그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지성이다. 어쩌면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결국 내가 찍는 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재구성하고 내 지성이 새롭게 인식한 것을 찍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도 좋은 사진이 무엇을 말하는지 명쾌하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방법이 하나 있다면 프로작가들과 다니면서 부지런히 찍어 보는 수밖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 많이 보고 많이 찍어 볼 때 자기만의 프레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해바라기 연가

당신이 보고 싶어 스스로 키를 키웠다.
뜨거운 당신의 심장을 닮고 싶어 
스스로 지상의 태양이 되었다.

혹시 보이는가?
내 가슴에 촘촘히 박힌 저 그리운 씨앗들
사는 게 힘들어 주저 않고 싶을 때도
장맛비처럼 하염없는 슬픔이 가슴을 적실 때도 
밤마다 외딴 섬을 떠돌며 
부유하는 바람 같았을 때도
당신만 보면 살아갈 힘이 생겼다

하여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저장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을 여물게 하는 것

그래, 그래.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태초부터 사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태초부터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홍석주 詩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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