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구 무괴아심

며칠 전에 장안의 화제를 뿌리고 다녔던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마디로 말해 형편 없는 졸작이다. 대중들은 영화의 흐름만 보고 열광했겠지만, 사실 수준 미달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차라리 언젠가 손현주가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추적자’라는 드라마가 10배나 좋다. 그런데 내부자 영화가 시작될 때, 무괴아심(無愧我心)이라는 사자성어가 적힌 액자가 이강희(백윤식) 등 뒤로 오버랩 된다. 아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테지만, 그 의미만 제대로 파악해도 이강희의 인간됨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무괴아심’은 한 마디로 말해 ‘내 마음에 부끄럼이 없으면 된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즉, 어떤 짓을 해도 나만 아프지 않으면 되고 나만 걸려들지 않으면 되고 나만 출세하면 된다라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깔려있는 말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나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이강희는 그렇게 나쁜 짓을 밥먹듯이 일삼아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즐기기까지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가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다.

정말 무괴아심하려면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하고 또한 얼마나 많은 제도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무괴아심을 외칠 수 있다면 정말 합당하다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의미로 쓴다면 그것은 정말 아전인수격이 아닐 수 없다하겠다.

우리사회가 언제쯤이면 무괴아심의 경지에 도달할지 모르겠지만(아마 영원히 불가능하지 싶은데)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짐승처럼 사는 게 아니라 관계망을 이루면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관계망은 서로의 마음까지 공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내 이웃의 아픔을 보고 통증을 느꼈다면 당신은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무괴아심(無愧我心)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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