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해가 밝았다. 갑오년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청마의 해다.

 저마다 믿는 종교의 방식대로 새해에는 가정과 사업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망의 기도를 드린다.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와 다름이 없는 것은 알지만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뜨는 해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 질수록 사람들은 기복적인 주술에 더 매달리게 된다. 생활고와 함께 자신감도 그만큼 떨어지는 까닭이다. 자신감으로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던 신앙생활도 다시 활발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교회나 절은 여느 해에 비해 더 많은 신도들로 붐빌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새해 점집을 찾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근기란 불가에서는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의 기운 또는 능력을 얘기한다.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는 네 개의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같은 연유이다. 지구상의 온갖 사물을 인연법에 근거하여 풀어내는 불교는 매우 철학적이고 과학적이면서도 이쯤 되면 약간 오싹하는 맘이 들게 된다. 종교의 위력이다.  필자는 근기(根機)를 根氣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문 실력이 옅어서 그 깊이를 다 혜량할 자신은 없지만 우선 나 자신부터 새해에는 청마의 기운을 받아서 지혜가 더해지기를 바라고 싶다.  위의 글머리 얘기도 알고 보면 근기에 연유한다. 평생을 푸줏간 일 밖에 배운 것이 없다는 그 처사에게 만약 푸줏간을 그만 두라고 하면 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하지 않고 선택을 고민하는 처사에게는 악업을 짓지 말고 피해갈 수 있도록 안내한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서 그 업을 천직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인연법에 의한 업인 것이다. 다만 지금은 상노를 가리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운명은 체념적 관점에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얻은 그릇의 크기만큼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기에 바야흐로 운명도 창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근기를 키우자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사람은 저마다 보는 만큼 얻고 살아간다. 국보 반기문 총장의 신년사라면서 인터넷을 달군 글 중에도 ‘현대인의 교육 수준이 높아져서 아는 것은 많아 졌지만, 그 깊이는 옅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만연하면서 옅은 상술과 물질이 사람들의 성질 즉 인성까지도 바꿔버렸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언젠가부터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 복잡 다난한 삶의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서 자신을 돌아보며 정신적 일탈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워서 깊은 지혜로 더욱 현명해지며, 더 아름답고 밝은 삶을 살기를 다시 한 번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