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번역가

사람은 모순투성이며 이율배반적이다. 이는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사람에게 불안이나 걱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생명을 단축하는 길이 되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 산길을 갈 때 괜히 긴장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은 혹시 자신의 생명을 해칠 짐승을 만나게 되면 빠르게 도망쳐야한다는 사전 경고 싸이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우리 신경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절대긍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긍정의 배후를 보면 대부분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절대긍정에 도달하겠는가. 물론 희망을 품고 열심히 자기 삶을 개선한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절대긍정은 오히려 좌절감을 안겨 줄 가능성이 크다. 구조족인 현실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자꾸 심리적으로만 절대긍정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얼마 전에 자살한 삼성 에어컨 서비스 기사도 일종의 절대긍정에 희생된 셈이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직업상 어쩔 수 없이 겉으로만 웃는 척 하게 되는 데, 이런 증상은 오래 가기 힘든 법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평생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보다 더한 고문도 없을 것이다.
특히 종교가 앞서서 절대긍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조물주는 우리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부여해 자신과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는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대책 없는 행복과 절대긍정이라는 마약을 주입하면서 소외된 사람의 감정마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춤추고 동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득권이라는 것은 이를 충분히 방증해주고 있다.
슬픔이란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아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실 사람은 기쁨 속에 있을 때보다 슬픔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할 때가 많다. 예수는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하늘님과 씨름하면서 슬픔 속에 잠겼다. 그러나 슬픔의 강을 건너고 나서 비로소 인류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부처는 어떠했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석가 부족의 왕자로써 절대긍정을 외치며 마음껏 향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늘 슬픔에 잠겨있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자기 혼자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냐는 것이었다. 마침내 석가모니는 왕자의 신분을 모두 벗어 던지고 깨달음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아니 성자라고 추앙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랬다.
그들은 1인칭의 슬픔이 아닌 3인칭의 슬픔에 더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대긍정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슬픔을 오히려 추방해야할 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쁨이 소외된 자들의 눈물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 기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수는 1인칭의 기쁨보다 3인칭의 슬픔을 더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때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았던 것이다. 1년365일 맑은 날만 계속 된다면 이 지구는 사막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때때로 슬픔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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