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혜 금일중 교사

“엄마! 공부 열심히 하고 수업 끝나면 전화해요.”“그래. 우리딸 고마워.”딸은 마치 놀이방에 아이를 떼어놓고 ‘시간되면 다시 데리러 올께’라는 눈빛을 보내고 돌아서는 엄마 같다. 학습연구년 기회를 맞이하여 감정코칭(최성애 박사) 훈련을 받기 위해 상경한 나에게 대학 4학년이 된 딸이 3월에 보내준 응원 모습이다.강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나는 오래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 나 여기 멍들었어.”“왜~?”“우리반 샘나가 내가 지나가는데 밀어서 책상 다리에 부딪혔어.”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딸은 매우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표정이었는데 나는 그걸 무시하였고 순간 내게 올라오는 뜨거운 뭔가를 숨기며 아주 훌륭한 엄마처럼 “네가 그 애한테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 아이가 너를 밀지 괜히 밀어?”“ ... ”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속상하고 화가나서 속울음을 울었다. 내 아이를 밀친 아이에 대한 화와 더불어 학교에서 친구들과 화평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생활하는 딸에 대한 속상함, 그래서 내 아이를 먼저 야단했는데 둘 다 마음이 상하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감정코칭 수업을 통해 내가 아이의 감정을 무시했음을 알게 되었다. 감정코칭의 기본철학을 수립한 하임 G. 기너트 박사는 뉴욕의 ‘문제 청소년’들을 상담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흡연이나 가출을 하는 등 문제행동을 보일 때 그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 주어 아이들이 굉장히 호의적으로 변하고 차츰 행동까지 교정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HD행복연구소 최성애 박사는 ‘아이의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제한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먼저 행동을 보지 말고 감정을 보라’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다시 마중 온 딸에게 수업이야기를 하며 슬며시 옛날장면을 꺼냈다. “딸! 오래전 이야기지만 엄마가 아쉬운 게 있어서 그런데 도와줄 수 있어? 옛날 우리대화 역할극으로 다시 해보자.”“그래 좋아요.” “엄마, 나 여기 멍들었어.”“아유, 저런. 멍이 파랗게 들었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오늘 쉬는 시간에 내가 지나가는데 우리반 샘나가 밀어서 책상에 찍었어.”“그랬구나. 친구가 밀어서 책상에 부딪힌 거로구나. 그때 기분이 어땠어 ?”“아프기도 하고 친구들이 보고 있어서 창피했어.”“그래. 엄마라도 아프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했을 것 같아.”“그래도 내 짝꿍인 민서가 괜찮냐고 말해줘서 조금 기분이 좋아졌어요.”“민서가 고마운 친구로구나. 그런데 샘나하고는 예전에도 그런 적 있었어?”“응. 저번에 ~~~”
10년이 훨씬 지나도록 웅크리고 있던 감정이 날개를 달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나도 딸도 눈물이 일렁였다. 그날 밤 딸과 밀린 감정들을 모두 꺼내어 청소한 후,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우리 모녀 사이에 보이지 않게 있었던 벽이 허물어지고 우린 제대로 힐링을 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딸이 훨씬 사랑스러워졌다. 한번 시도해 보자. 문을 꽝 닫고 나가는 아이에게 “버르장머리가 뭐냐?”라고 소리치기 전에“너 화났구나.”형제끼리 싸우고 기운이 꺾인 자녀에게 “뭘 잘했다고 그러고 있어?” 하기 전에“너 속상했구나.”자율학습 빼먹고 끝날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자녀에게 “너 어디 가서 뭐하고 지금 오는 거냐?” 하기 전에 “너 힘들었구나.”라고. 감정을 어루만져 줄 때 사람은 진심어린 반응을 보이게 되고, 그런 반응이 마음에 쌓여갈 때 비로소 행동의 변화도 찾아오는 법이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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