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선 주 광양위스타트복지사

책상 앞에 놓여 있는 탁상용 달력을 보니 어느 새 11월도 하순을 넘어가고 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가끔씩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울 때가 있다. 아마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 마음도 괜히 분주해지기 시작할 터이다. 더러는 ‘올 한해 무엇을 했나’ 하면서 한숨 쉬며 후회하는 사람도 꽤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맘때가 되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다른 계절과는 달리 겨울에 절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절망과 희망을 일란성 쌍둥이로 받아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우리는 모두 그렇게 크고 작은 절망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통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데 반해 오히려 그 고통을 자기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폭풍이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는 속담처럼, 고통이 어쩌면 우리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훌륭한 스승님인지도 모른다.

헬렌켈러라는 위대한 여성을 키운 설리반 선생님만 해도 그렇다. 그녀의 삶은 불행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그녀는 친척집으로 보내졌지만 친척들은 다시 그녀를 병원에다 넣어버렸다. 심지어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어느 간호사의 따뜻한 보살핌 덕에 그녀는 일어설 수 있었고, 마침내 훌륭한 선생님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됐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시선을 먹고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시선을 먹고 마음과 육체가 동시에 성장하게 되는 법이고, 부하직원은 상사의 따뜻한 말한 마디에 창조적인 능력을 개발하게 되는 법이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모두 조금씩만 거들어 주면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잠시만 마음을 열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기를 ‘가난한 이웃은 하느님의 가면’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며칠 있으면 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자선냄비는 구세군이 연말에 실시하는 가두 모금 운동으로 1891년 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다. 그는 갑작스럽게 재난 당한 사람들을 구제할 방안을 찾다가, 옛날 영국의 부둣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했던 “심슨의 솥"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솥 단지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Keep the Pot Boiling)!"라고 써서 붙였던 게 바로 자선냄비가 탄생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요즘 자선냄비의 무게가 점점 줄고 있어 고민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는 나로서 예전과 최근 몇 년을 비교해보면 경기변화로 인하여 후원이 많이 줄어들고 있고, 공적기관의 모금활동으로 인하여 모금의 형태가 변하기도 하여 소규모 복지기관의 어려움은 더해가고 있다. 후원자를 연결하기 위하여 더욱더 많이 뛰어야 하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많은 홍보와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솥이 뜨겁게 끓어오를수록 우리 사회도 그 만큼 훈훈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물론 냄비를 끓게 하는 가장 좋은 땔감은 바로 당신의 따뜻한 눈길과 손길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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