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율 중마고등학교 3학년

금요일 아침부터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 가느다란 실 방울을 조금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더운 날의 연속이었던 하늘이 그 기세를 조금 꺾는 듯싶어 평소 같으면 무척 반가웠을 비였지만 그 날은 예외였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친구들이 찾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유독 시간이 가지 않았다. 처음 경험해 보는 다른 나라 학생들과의 만남은 생각만 해도 흥분될 만큼 기대됐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의 어색함에 대한 걱정보다 ‘언어의 장벽’이 더 큰 문제였다.

그렇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나와 홈스테이 짝인 후루사와 미사또와 첫 만남을 가졌다. 미사또는 일본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한국의 대가족 생활이 궁금하다며 우리 집에서 머물기를 원했던 학생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예상처럼 매우 어색했다. 같이 있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생각하다 보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친구 진실이와 함께 미사또의 한국 구경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진실이는 일본교류 스텝으로 뽑혀 이미 미사또와 대화를 주고받은 상태였다. 어렸을 적부터 광양에서 자라 해외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나는 우습게도 외국인 공포증이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이 눈앞에 보이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진실이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미사또와 이야기하고 즐겼다. 그 둘의 대화는 자세히 들어보면 엉터리 단어와 몸짓 언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가 가능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진실이처럼 미사또와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준비했었던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 단어나 뱉었고 몸짓으로 설명해야만 했다. 그러자 미사또는 엉터리 설명을 알아듣고 몸짓과 엉터리 단어들로 답을 해 주었다.

순간 그동안 힘들어했던 외국인과의 대화의 두려움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과 이야기 하는 것은 정확한 문장력을 구사하고 문법에 맞춰야 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미의 소통이 바로 대화인 것이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언어의 장벽을 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아주 쉬웠다.

한국에 처음 방문한다는 미사또와 한국 TV 음악방송을 보며 K-POP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마트를 가서 여러 가지 기념품을 같이 골라주었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라면이나 과자 같은 것도 미사또에겐 한국의 물건으로 좋은 기념품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 정책에 대해 서로 비판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며 토론의 장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은 학교 공부 못지않게 학생들의 학교 밖의 여러 활동에 대한 지원이 매우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수능과 내신 성적을 위해 학원을 가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달리, 자치적 동아리를 통하여 지역사회의 행사를 주체하기도 한다는 점이 정말 인상 깊었다.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권은 어른들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에게 미사또의 이런 이야기들은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부러운 이야기였다.

그 후로도 우리는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드디어 미사또를 떠나보내는 날 아침, 아쉬움 때문인지 둘 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가 데려 주셔서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고, 이메일 교환을 약속하며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짧은 일정을 뒤로 하고, 그녀는 돌아갔고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보내야 했다. 요즘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 두 나라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자꾸 마사또가 생각났다. 아마 마사또와 나는 분쟁보다는 화해를 선택할 것 같은데, 글쎄. 마사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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