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순천하늘씨앗교회 목사

요즘 사람들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나는 목사로써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마음의 짐을 덜면서 살자고 설교해 왔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베스트셀러 중에 스님이 쓴 책이 두 권이나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책을 통해서나마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던 것이리라. 솔직히 마음의 짐을 전부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거운 배가 바다 위를 매끄럽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부력(浮力)이 있어야 하듯이 마음의 짐도 어느 정도 있어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역대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하나 같이 무거운 짐을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짐을 졌고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짐을 졌으며 소크라테스는 악법이라는 짐을 졌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삶의 짐을 피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 지려고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눠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빈번해지는 묻지 마 범죄도 누군가 조금만 거들어 줬더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음의 짐을 나눈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도 있다.
나도 내 나름대로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지난 주 추자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목사라는 직업도 알고 보면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성도들의 상황을 모두 알고 하느님께 부탁을 드려야 하는 것이 고유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배 위에서 바라 본 고즈넉한 섬들은 아주 평화롭게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막막한 수평선은 마치 가야금의 현(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퉁기면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섬을 오가는 작은 카페리 호(號)는 섬 주민들의 유일한 구원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다닌다는 이 배는 늙은 노인처럼 여기저기 상처 난 몸을 이끌고 바다를 항해했다. 모처럼 홀가분한 여행이라 그런지 내 마음도 여유로웠으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누군가 여행은 삶의 문지방을 넘는 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 말에 다시 한 번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현실이라는 문지방을 넘어서자 온갖 낯선 환경들이 내 오감을 일깨웠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에서 나를 새롭게 재발견하는 데 그 매력이 있겠지 싶었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우리네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고 하는 가르침이 그렇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망각한 채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진짜 여행자는 먼저 짐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초보 여행자일수록 이것저것 짐을 많이 챙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형벌이다. 명예와 재물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면서 사는 것을 볼 때는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 사람들 눈에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 올리 없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의 손을 잡아 줄 여유가 없을 터이다. 본인 역시 외로운 여행을 하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 것이다. 지금 당신의 삶만 무거운 게 아니다. 잠시만 짬을 내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자기 나름대로 짐을 지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천 년 전에 청년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바라기는 이 지구별에서 짧은 여행을 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여행을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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