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 국립순천대 박물관장

무라야마 일본 전 총리가 지난 5월 12일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순천 운평리 고총과 유물을 발굴한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운평리 고분군은 2006년 순천대 박물관이 최초로 발견한 전남동부지역에서 유일한 대규모 고분군이다. 주목되는 유구는 6세기 초엽의 가야계 고분이다. 이 고분은 백제가 전남 동부권을 장악하기 직전인 기원후 500년을 전후한 시기의 토착세력의 지배층 무덤이다.
1, 2차에 이어 3차 발굴조사에서도 대가야계 유물들만 출토됨으로써 일본학자들이 주장해온 임나본부설이 허구임을 다시 확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은 지난 2010년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라고 합의한 부분을 다시 확인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이기도 하다.
이로인해 순천 운평리 고분군 발굴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중앙신문과 경향신문이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되었고, 영자신문을 통해서도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그 결과 박준영 전남도지사, 조충훈 순천시장, 최몽룡 서울대 교수, 교과부 역사교과서 관계자 등 많은 관계자들이 발굴현장을 방문하였다. 무라야마 일본 전총리의 방문도 이런 연장선상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무라야마 일본 전총리는 1995년에 태평양전쟁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일본 정치인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1년 구소련 해체이후 다원화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극 부응하려는 일본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다원화되고 있는 현 시기 동아시아와 세계정세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라야마 전총리 방문은 몇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무라야마 총리가 이번에 식민사관의 핵심 축인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순천 운평리 발굴유물을 보러 온 것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미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게 된 무라야마 전 총리의 당시 소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무라야마 전총리는 한일과거사 문제를 동아시아의 평화적 발전전망과 연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순천대박물관에서 진행된 순천 운평리 고분군 발굴설명회에서 행한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발언은 한일 양국사이의 과거사 문제를 보다 전향적으로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방문을 자료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방문자료집을 8월 중에 발간할 예정이다.
21세기 한일관계는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1945년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과 사회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은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다가설 필요가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불행한 과거이고 여전히 해결해야 될 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현대의 민감한 역사적 쟁점들을 덮으려 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하여 다원화되는 세계 및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걸맞게 과거사 문제를 보다 진취적으로 정리해나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일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소모적인 감정대립이나 ‘과거사의 정치적 이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진일보시키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 무라야마 전총리의 운평리 고분군 방문을 계기로 1995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를 넘어서는 선언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데스크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