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제 2 제철소는 충남 아산만이 아니라 전남 광양이라고”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 그동안 그가 이룩한 업적은 그 어떤 수식을 동원해도 모자랄 정도다. 하지만 강철 같이 강인한 그 역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세상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암(靑岩)이라는 본인의 호(號)답게 그는 푸른 생명력을 가진 거대한 바위가 되었다. 물론 그에게도 어려운 난관은 있었지만 강철 같은 그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소설가 조정래는 자신이 직접 쓴 박태준 전기에서 그를 ‘용광로보다 뜨겁게 격동기를 살아온 일꾼’이라고 표현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용광로보다 더 뜨겁게 살아온 열정의 사람이었다. 사실 박 회장이 아니었으면 세계적인 광양제철소는 광양이 아닌 아산만에 건설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광양제철소는 박 회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제철소 준공으로 환골탈태한 광양
불과 30년 전만 해도 광양은 조그만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광양은 환골탈태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전남22개 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도시가 됐다. 포항에 이어 제2철소가 광양에 오게 된 일화는 지금도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느 날 전두환 대통령이 불러 청와대로 찾아갔더니 집무실에 아산만 지도를 걸어놓고, 건설부장관이 포항제철소 제2공장 건설 부지로 아산만이 가장 적당한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체 건설부장관의 말만 묵묵히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을 쳐다보면서 “하실 말씀이 없느냐?” 고 물었고, 박 회장은 이 때다 싶어 “제철소는 자본집약적인 산업이라서, 많은 자본을 투자해 건설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빠른 시일 내에 제품을 생산하여 자본을 회수해야 하므로, 20만 톤급 배가 원료를 싣고 입항하여, 365일 하역을 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하는데, 아산만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해 배가 하루에 9시간밖에 접안할 수 없기 때문에 제철소 건설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조리 있게 설명한 뒤 “이에 반해 광양 태인도는 여수반도가 가려져 큰 태풍 불어도 피해가 없으며,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이 또한 심하지 않아 365일 접안은 물론, 원료와 제품의 상.하역이 가능해 제철소부지로 최적지"라고 설명하게 된다. 이러한 박 회장의 설명을 모두 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광양으로 결정하게 되는 결단을 이끌어 내게 된다.

無에서 有를 창조한 강철 맨
박 회장은 1981년 광양만에 ‘포철 제2사무소’ 간판을 내걸고 또다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지 않은 광양바다였지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는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1982년 9월28일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했고 1985년 3월5일 연간 250만톤 조강 생산능력을 갖춘 1기 설비 건설에 착공해 1987년 5월7일 준공하게 된다. 그리고 1992년 10월 광양제철소가 종합준공되면서 '조강생산 2000만톤'을 꿈꾸었던 박 회장의 목표는 이렇게 해 광양에서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평소 자리에 연연하지 않던 박 회장은 광양제철소를 세계적인 철강사로 일으킨 후, 미련 없이 떠난다. 64세가 되던 1992년 10월,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고 박정희 대통령이 25년 전 자신에게 부여했던 ‘세계적인 종합제철소의 완공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했다’고 보고하고 그는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다. 　

조국愛 하나로 버틴 사나이
오로지 조국건설에 대한 열정하나로 ‘철강신화’를 일군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1927년 경남 동래군의 바닷가 시골마을(현재 부산시 기장군)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와세다대 기계공학과를 다니다가 해방 후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 6기로 들어가 당시 중대장이던 박정희 대위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1961년 쿠데타 이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된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최전선부대 중대장으로 참전해 공을 세운다. 5ㆍ16혁명 때는 직접 거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된다. 1963년 대선 전후 박 대통령의 정치참여 설득을 거부한 채 그는 전역한 뒤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난다. 바로 이듬해인 1964년 박 대통령은 그에게 경제개발5개년계획 실행을 위해 일본 특사의 특명을 맡겼고 그는 유학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상을 현실로 만든 熱情
그해 12월 텅스텐 수출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40세가 되던 1968년 종합제철소 건설추진위원장을 맡는다. 이것이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첫 출발이다. 이듬해 12월 포항제철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한ㆍ일기본협약이 체결됐고, 제철소 건설자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기술도 자금도 없는 판국에 첫 삽을 뜨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반도에 종합제철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무모할 정도로 비춰졌다. 그래서 미국도 계약을 파기했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과의 협정 체결도 무산되고 만다. 결국 박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대일청구권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회담을 극적으로 성사시킨다. 또 일본 3대 철강 오너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기술 이전을 약속받는 등 그의 열정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시작한다. 이후 1973년 6월 9일 제1고로에서 첫 쇳물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조업 개시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한 그는 고로를 차례로 증설하고 포항제철을 세계적인 제철소로 일으키는 기반을 닦는다. 포항 제철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박 회장은 다시 눈을 광양제철소로 돌려 마침내 광양시를 명실상부한 경제도시로 도약시킨다. 재정규모 또한 30년 전에 불과 59억 수준에 불과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약 5000억원으로 무려 80배가 늘었다. 광양시가 고 박태준 회장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故 淸岩 박태준 회장 연보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 출생
1948년 부산 국방경비대에 자원.
훈련 중 남조선경비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6기 생도로 선발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
1964년 대한중석 사장
1967년 종합제철건설
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초대 사장 취임
1971년 재단법인 제철장학회 설립
1972년 영일만의 첫 공장으로
증후판공장 준공(7월 4일)
1973년 제1고로 첫 출선 성공
(6월 9일), 포항1기 설비
종합준공(7월 3일)
1981년 사단법인한일경제협회 회장
피선. 포항4기 설비 종합준공
(연산조강 85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초대 회장 취임
제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민정당) 비례대표 당선
국회 재무위원장
1985년 광양1기 설비 종합착공.
1990년 민정당 대표 취임.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
자당) 출범, 최고위원 취임
광양3기 설비 종합준공(연산
조강 810만 톤 체제 확립)
1992년 광양4기 설비 종합준공 및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준공’
1993년 해외 유랑
1997년 포항 북구 보궐선거 당선.
자민련 총재 취임
2000년 자민련 총재 사퇴, 국무총리
취임. 포철 민영화 완료(10월4일)
2001년 뉴욕 코넬대학병원에서
폐 밑 물혹 제거수술.
포철 명예회장 재위촉
2005년 포스코청암재단 확장 설립
2011년 12월 13일 별세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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