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철학이다”

그림은 고독한 작업
최영 화가를 만났다. 처음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에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최영장군을 연상시켰다. 그는 현재 중마동사무소 건너편에서 '터'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특이한 남자다. 카페 옆 공간은 화실과 연결돼 있어 손님이 찾아오면 바로 맞이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고나 할까. 그가 그림을 그려 온 지도 30년이 넘는다. 홍익대에서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은 실력파지만 지역 화단에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작품은 고독하게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는 홀로 작업을 한다. 예술의 핵심은 늘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실험정신이 빠진 예술은 이미 그 자체로 가치를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최 화가가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이고 또 그린 그림을 전시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그래서 카페를 들어서면 그의 작품들이 제일 먼저 손님들을 반긴다. 그도 한 때는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홀로 카페를 운영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반 추상과 비구상작품을 주로 그리고 있어요. 관람객들이 제 그림을 볼 때, 잠들었던 의식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구상이 그런 면에서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삶이 곧 예술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 예술의 개념 또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전 시대만 해도 예술에는 일정부분 형식이 있었지만 현대는 그런 형식을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인 시대가 됐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미술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마르셀 뒤샹은 어느 날 갑자기 변기통을 갖다놓고 그게 설치 예술이라며 당당하게 전시한 적이 있다. 물론 관람객들 대부분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지만 뒤샹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삶과 예술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인식하는 데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적인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예술은 우리의 일상을 부정하거나 뒤집어 보게 함으로써 색다른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데 있다. 일상의 삶은 늘 반복적이라 쉽게 권태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일상을 전복시킴으로 인해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결국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 삶의 중심에 숨 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예술은 시대의 산물
“작고한 앤디워홀도 그런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팝 아트라는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흔히 잘 그린 만화를 확대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는 대중 예술가들을 전면에 내세워 껍데기만 쫓는 현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거나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도 어느 정도 그런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게 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 뜻에서 그의 그림은 이미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예술은 결국 시대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어떤 예술이 됐건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네가 살고 있는 현실과 삶이 얼마나 덧없는데 너는 그렇게 쓸데없는 욕심을 붙들고 있느냐, 하며 우리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새로운 사고방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는 데 그게 바로 예술이 주는 또 다른 가치다."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장인과 함께 사업을 했는데 아이엠에프 여파로 부도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결국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화가는 작품으로 승부해야
"화가는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된다. 나는 적어도 그런 정신으로 살아왔다. 나는 전시회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죽기 전에 딱 한번 전시회를 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특별한 사람에게 기증하고, 전시한 작품은 모두 불태울 것이다." 그는 특히 운보 김기창 선생님과 절규의 화가 뭉크를 좋아 한다. "김기창 화백은 말년에 자기 그림을 다시 사들였다.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뭉크는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현대인의 불안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한 전율을 느끼게 되고 또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도 대부분 몽환적이다. 그 정도의 표현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상과 반구상을 30년 정도 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림의 생명은 독창성
“그림은 새로운 창작이 생명이다.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지운 뒤 뒷날 또 화장을 하듯이 작가는 끊임없이 그런 작업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가 본인 작품에 스스로 붙인 그림 제목도 하나 같이 독특하다. 고양이가 보는 눈, 허튼 소리, 색즉시공 등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은유가 주류를 이룬다. “알고 보면 삶도 한 바탕 꿈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모두 자기만의 인생 그림을 붓질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 번뿐인 인생 아름답게 산다면 그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커피를 타고 그림을 그리는 최영 화가는 누가 보아도 기인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그림은 지역이 아닌 서울에서 이미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그는 조개 속에 숨어 있는 진주처럼 조용히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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