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아들이 아닌 어머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 다들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사건일 테다. 지난주에 우리는 공부 잘하라는 어머니 성화(成火)에 못 이겨 끝내 어머니를 살해한 고등학생의 사건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게도 그 학생의 성적은 늘 상위권에서 내려 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각종 경시대회에 나갔다하면 금상 이상을 수상했으며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900점을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밤낮없이 애를 들볶은 모양이다. 심지어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기도 했고 밥을 굶기기도 했으며 16시간을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런 가슴에 무슨 인성이 싹 틀수가 있었겠는가.

#결국 아이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머니를 없애거나 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도망쳐 나오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서는 것 마저 두려웠는지 어머니를 살해하고 말았다. 혹자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쯤 되면 그런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올 수도 있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 학생은 처음부터 엄마라는 손에 의해 철저하게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맹수라고 해도 새끼 때부터 사육사의 손에 길들어지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몸의 해방은 정신이 먼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야 하는 법인데 정신마저 폭력과 두려움에 가둬져 있는 이상 스스로 자유인이 되지 못하는 법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시 내 자신부터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너무 당연시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하는 목적보다는 일단 공부는 잘하고 볼 일이라며 은근히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공부를 못하게 되면 결국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고 좋은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면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참 유치하고 치졸한 협박임을 잘 알고 있지만, 아마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부모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내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공부 못하는 데 마음이 편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외치며 자살을 한 학생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성적순이 행복을 결정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더 극성은 한국의 어머니들이다. 아버지들에 대한 실망이 자식에게 투영되기 때문에 그러는지 몰라도 하여튼 한국의 교육은 대부분 어머니들이 좌지우지 하는 게 사실이다. 이웃집 엄마가 교육전문가의 이론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게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살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머더'(murder)와 ‘어머니'를 뜻하는 ‘머더’(mother)가 왜 그렇게 유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올해 필자 아들도 수능을 보기는 봤는데 글쎄다, 마땅히 갈 대학이 있는지 걱정이다. 그래도 기죽지 말고 제 길을 찾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믿는 만큼 자라주는 게 아이들인지라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련다. “아들아, 점수에 너무 목을 매지는 마라. 좀 힘들겠지만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 가면 될 것 아니냐." 물론, 몇 배로 힘들 각오를 해야 하겠지만....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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