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 詩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시몽 그대는 아는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지천에 낙엽이다. 낙엽이라는 말은 묘하게 사람을 흔드는 마력이 있다. 그 푸르던 정맥들이 노랗게 퇴색된 채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다. 아니, 바람에 쓸려 다니는 낙엽의 비애는 또 어떻고. 나무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제 몸에 난 생명들을 이렇게 해서 떠나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래야 내년에 또 새로운 잎들을 피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낙엽을 보면서 한 장의 지폐보다 더 아까울 때가 있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깊게 물든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야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흰소리에 불과하겠지만서도. 그래서인지 낙엽은 더 이상 은유법을 들려주지 않는다. 모든 게 돈으로만 환산되어야 가치를 느끼는 우리들에게 낙엽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다. 혹시,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낙엽을 책갈피로 만들어 썼던 그 때를...만약에 없다고 한다면 당신 삶은 그 만큼 메말라 있다는 증거다. 그런 가슴은 결코 동정과 연민의 싹을 틔울 수 없는 법이다.

이제 본격적이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이즘, 낙엽들은 다시 자연의 원소로 되돌아가기 위해 자기를 해체시키고 있다. 하긴, 우리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다를까. 인생의 가을이 오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장의 낙엽처럼 세상을 떠나고 말 터인데. 이게 바로 서로를 기억해야 할 이유다. 때로는 아름다운 기억 하나가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때도 있다는 거, 당신도 종종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여, 이렇게 묻고 싶다. "그대여, 들리는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홍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