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에로티씨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구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근대사상을 뒤엎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미 조금씩은 알고 있듯이 마르크스는 경제 하부구조가 차지하는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 합리성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서슴없이 비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니체는 날것 그대로의 인간의 욕구와 의지를 찬미하며, 합리적 인간의 모순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무의식적인 성본능(性本能)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고상한척(?) 하는 인간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폭로한 사람이다.
#이들 세 사람 중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프로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속에 은밀히 감추어 두었던 인간의 성 욕구본능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성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프로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크 라캉'을 비껴갈 수 없다 하겠다. 라깡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합리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로 보는 것에 반발하면서 인간의 본능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탁월한 업적을 나타냈다. 프로이트가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libido)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힘으로 간주한 반면에 라깡은 언어라는 도구를 도입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해명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성적인 무의식은 끊임없이 발산할 출구를 찾는데 그 탈출구가 언어라는 것이다. 그는 소쉬르가 말한 것처럼 기표와 기의의 관계 즉 음성 표현(또는 시각적 이미지)과 그것이 함축하는 개념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드러낸다고 봤던 것이다. 문제는 이 두요소가 항상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기표의 내용에 충실하고자 해도 본의 아니게 표현 자체에 이끌려 다른 내용으로 와전되는 수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는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의식이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운명적으로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말이란 전적으로 무의식의 표현이며 무의식은 언어로 나타날 경우 자신의 본 의도를 부정하고 속이는 경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대화 할 때 나타나는 겉보기의 논리와 합리성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적 욕망에 이끌러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성교를 목격한 어린아이에게 그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치 않으나 그것은 시각적 이미지 즉 기표로 기억 속에 각인돼 그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성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깡은 언어가 기본적으로 은유적이라고 본다. 은유는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복잡한 내용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시킴으로써 내용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억압한다고 봤던 것이다.
#언어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없는 까닭에 상징적 기능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적나라한 체험의 세계는 무의식으로 가라 앉게 된다는 식이다. 결국 섹스나 에로티씨즘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단어 그자체보다 그 말에 대한 경험과 그 뜻이 내포하고 있는 상상 때문에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언어 그 자체가 성적인 흥분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겠다. 언어와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이미지가 결국은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해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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