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등불을 켜면

詩 문정영

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보면

저만큼 지나가 버린 사람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젊음의 서투른 젓가락질 사이로 빠져나간

생각들이 접시에 다시 담기고

사랑니 뺀 빰처럼 부풀어 오른 한낮의 취기도

딱딱한 거리를 훈훈하게 한다

나무들도 나처럼 한 잔의 술로

등불을 켜는 것일까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윈 저들의

어깨가 지나친 사람의 뒷모습처럼 아름답다

한때 와디가 흐르지 않는 사막처럼

모래성이 쌓이던.

씹히지 않던 일상도 생각의 양쪽 어금니를 사용하면

잘게 부셔져 소화된다

입 속을 행구워낸

한 모금의 수돗물로도 입내음이 향기롭다

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보면

스쳐 지나간 사람의 옛모습도

종이학처럼 작게 접힌다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지금은 가슴에 등불을 켜야 할 때

삶은 신기루와 같다.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신기루 말이다. 심지어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이라는 시간에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빈손이요, 빈 가슴들이다. 그런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물건을 사들이고 세상의 허영으로 포장을 하지만 당신은 오래전에 이미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삶은 결국 스치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니, 겉으로 보면 가진 게 많은 것 같은데 마음은 상처와 열등감으로 늘 들끓고 있다는 것을.

하긴, 당신만 그러는 것은 아니니 마음 놓으시라. 요즘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산천도 조만간에 앙상한 뼈만 남을 테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단풍이 아무리 붉은들 영원할 순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짧은 순간의 찰라 때문에 그렇게 愛태우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자본주의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모든 삶을 소진하는 우리들에게 등불을 켜라고. 그렇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따듯한 등불이 되어야 할 때다. 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보면 스쳐 지나간 사람의 옛 모습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대여, 마음의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등불을 켜자.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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