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동공 詩박주택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 말 한 마리

아주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들이 그 위를 비추면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꽃들이 어둠을 물리칠 때 스스럼없는

파도만이 욱신거림을 넘어간다

만리포 혹은 더 많은 높이에서 자신의 곡조를 힘없이

받아들이는 발자국, 가는 핏줄 속으로 잦아드는

금잔화, 생이 길쭉길쭉하게 자라 있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때때로 우리들은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자신을 가두고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휘다니,

기억의 풍금 소리도 얇은 무늬의 떫은 목청도

저문 잔등에 서리는 소금기에 낯이 뜨겁다니,

갈기털을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 말 한 마리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러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

그 숨결에 일어서는 자정의 달

곧이어 어디선가 제집을 찾아가는 개 한 마리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을 토하며

어슬렁어승렁 떫은 잠 속을 걸어 들어간다

시집『꿈의 이동건축』,『사막의 별 아래에서』외

슈퍼맨, 슬퍼맨, 술퍼맨이 되어가는 인생이여!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며 살아가지. 때때로 마음은 전쟁터가 되기 일쑤. 쓸데없는 경쟁에 삶을 소진할 때도 있었고, 행복을 저당 잡힐 때도 있었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욕망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슴을 들썩이게 만들었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세상의 근심들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지. 가끔씩은 용기를 내 세상의 모든 미련을 끊겠다고 큰소리를 쳐보았지만, 술 깨고 나면 후회막심이었지.

간혹 백사장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말이 되고 싶었고 또 지친 날개를 접고 쉬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으나, 돌아보면 마음 한 평 둘만한 공간이 없었지. 야근을 마치고 술 한 잔 걸치고 돌아가는 밤, 전봇대를 부여잡고 속에 있는 것들을 싹 게워내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기억의 풍금소리는 희미해져가고 흘러간 시간의 동공(瞳孔)에는 쓸쓸함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슈퍼맨’이 되고 싶었지만 계절이 바뀌어 갈수록 ‘슬퍼맨’과 ‘술퍼맨’이 되어가고 있었지. 어슬렁거리며 제 집을 찾아 들어가는 한 마리 개처럼 우리도 꿈을 토해 내며 그렇게 대책 없는 삶 속으로 애벌레처럼 기어들어 가야만했지. 우리도 기껏해야 밥벌레 아니면 돈벌레에 다름이 아니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을은 또 이렇게 깊어만 가는데...

홍봉기 기자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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