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위치한 조계산(曹溪山), 1986년, 광양으로 이사 와서 처음 찾은 곳은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 종주코스였다. 두 사찰을 잇는 종주코스는 형형색색의 단풍 옷을 갈아 입어 새색시였던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수채화 같은 가을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조정래씨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한 조계산은 해발 884m로 동쪽에는 선암사, 서쪽에는 송광사가 있으며 산세가 부드럽고 높지 않아 연인끼리 또는 가족단위 소풍 코스로 최고다. 조계산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가을이면 선암사 단풍은 붉다 못해 핏빛으로 물들기에 산악인들이 줄을 잇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선암사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6.7km의 등산로는 산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코스다.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으며 장군봉 정상을 오르는 길목에는 대나무 울타리로 단장되어 사그락거림도 들을 수 있다.

조계산 굴목이재는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갯길이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이고 송광사는 조계종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로 향하는 길에는 활엽수의 바다라는 편백나무가 서 있어 장관이다. 울창한 편백나무숲을 지나면 등산로는 제법 산길다워지고 화사한 단풍 터널이 이어진다. 또 산길은 툭툭 불거진 바위들과 꿈틀꿈틀 뻗어나간 나무뿌리가 떨어진 단풍 잎을 덮고 있다. 고깔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른 이 길을 따라 선암사와 송광사 두 절의 스님들이 오가며 우정을 나눈 길이기도 하다. 사실 굴목이재는 두 개다. 선암사에서 오르는 길의 고갯마루는 선암굴목이재라 부르고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고갯마루는 송광굴목이재로 부른다.
선암굴목이재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나그네를 붙잡는 보리밥집이 있다. 전라도의 푸짐한 인심이 담긴 보리밥, 이곳에서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은 꿀맛이다. 허름한 주막집 같은 이곳은 직접 기른 열무랑 나물들이 한 상 가득 나오고 보리 비빔밥에 생뚱맞게 상치가 따라 나온다. 이 보리밥집은 방이나 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널찍하게 깔린 평상 아무 곳이나 앉으면 된다. 마당 한켠에는 가마솥도 걸려 있다. 직접 이곳에서 누룽지를 끓여 숭늉으로 대접하는 것도 이 집의 인심이다. 그 맛이 그리워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보리밥집에서 푸짐한 식사를 하고 쉬엄쉬엄 내려가면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마중을 나오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인 송광사가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 코스는 보리밥집에서 점심 먹는 시간을 포함해 넉넉히 5시간은 잡아야 하며 절을 둘러보려면 한 두 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조계산행을 마치고 승보사찰인 송광사나 고찰인 선암사를 돌아보며 목탁소리, 불경소리가 하늘에 곱게 퍼지는 맑은 산사에 젖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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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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