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도 프로정신이 필요…소장가치 있는 작품을 그려야”

원시적 관계성 회복을

채수평 화가를 만났다. 보기 드물게 독특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현재 광양읍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지만 서울 인사동에서 작품 전시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자기 색깔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는 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디아스포라(이산, 흩어짐)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역시 초등학교 아들이 호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는 단순하게 이산(離散)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이 디아스포라의 성격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또 인간의 가치관은 여지없이 부셔져 내리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편리한 과학문명이 사람의 속성을 빠르게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시적인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몸부림을 치고 있다. “화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주제를 먼저 설정하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한 화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향후 내가 어떤 그림으로 내 예술 세계의 정체성을 세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화가는 작품으로 승부해야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프로정신은 스포츠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오기와 근성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지금 구입해 두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권면하기도 한다. “소장가치가 없는 작품은 그저 눈요기에 불과하다. 내가 비록 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서울 인사동에 진출하는 것도 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물론, 인사동에 진출한다고 해서 다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수많은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고 평가 받는 세계라 자기 작품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과 어깨를 겨루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잘 팔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 면에서 그는 솔직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작품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전업 작가들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또 그렇게 평가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내 그림의 모티브는 바다와 여인

그가 주로 작품의 주제로 삼는 오브제는 바다다. 특히 그의 붓을 통해 되살아나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철썩거리는 소리를 낼 것만 같다. 미술 평론가인 홍보라매씨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바다와 바람에서 그 진실 된 자신을 찾고자 하였으며, 나아가 가족애와 부성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구원에 이르고자 하였다. 때때로 작품 배경을 비워두어 고독과 단절감 그리고 격정을 강화시켰음이 엿 보인다. 바다와 나무(작가), 작약(어머니가 기르셨던 꽃), 할미꽃(양지 바른 곳에서 피는 부드러운 살결 같은 촉각적 의미의 꽃) 그리고 레고 장난감이나 드레곤(아들)과의 교감적인 상징들로 표출하고 있다. 근경과 원경만으로 2단 구성을 함으로써 공간적 거리에 대한 무한함을 부여하여 이산((離散)의 의미를 강화시켰다. 자신의 존재를 ‘바다’라는 상징으로 내세우면서 그 내면의 심상은‘바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세찬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나 바람을 맞고 서있는 나무들에게서 외로움과 번민의 흔적이 드러난다."

낯설게 만들어 스스로 질문 던지게 하기

채 화가의 그림 중에는 더러 바다 위에 여인과 꽃이 등장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넓은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여인의 넓은 마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꽃 역시 마찬가지다. 파도는 더러 남성성을 가진 힘의 가치로 묘사되지만, 결국 파도(남성)란 것도 바다(여성)라는 공간 내에서만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낯설게 하기란 관객들에게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내면의 말 걸기에 다름이 아닌 셈이다. 다만 작가는 시침을 뚝 떼고 모른 척 하는 것뿐이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현상을 지각하며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체가 언제나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익숙함과 편리함은 좋은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한다. 바로 권태와 따분함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복과 권태는 익숙한 인간을 만들어 사회를 급속하게 붕괴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회는 소통이 단절돼 당연히 인간성이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자리에 예술이 필요한 법인데, 예술은 삶을 색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드는 내적인 렌즈를 스스로 갖게 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삶의 에너지까지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가치가 크다고 했던 것이다.

예술은 타성을 흔들어 깨우는 각성제

포이에르바하는 오성의 활동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틀에 박힌 삶을 강요하게 되면 사람은 고착화 되고 사물화 된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채수평 화가의 그림은 평범한 일상과 타성에 젖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각성제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고 있다.
그동안 개인전과 단체전 전시회만 해도 150회를 넘길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이달 9일부터 15일까지 중마동 동광양새마을금고 3층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꼭 한 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간혹 예술이 밥먹여주냐며 예술 자체를 낮게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짐승은 아니지 않는가.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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