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준 소설가/광양고등학교 교장

몇 년 전, 제가 거머쥐고 고심했던 화두가 ‘도방하(都防下)’였습니다. 자꾸 삿된 마음을 품게 되고, 뭔가를 도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엄습하던 때입니다. 소설 한 편 제대로 써서 대박 터뜨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허풍을 품었습니다. 더불어 세태의 일과 자리에도 연연해하였지요. 속살이 꽉꽉 차 있지도 않은, 그렇게 빈 깡통의 모습으로 살던 제게, 퍼뜩 떠오른 화두가 ‘모든 것을 놓아라‘ 였습니다. 가당치 않은 허욕, 이룰 수 없는 과욕이 저를 해치려는 순간 참으로 고맙게도 제게 찾아온, 제가 찾은 화두였지요. 그런데 사실은 지금까지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놓을 수 있을 만큼 제 속내가, 내공이 깊지 못한 연유지요.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건, 종이 값 아까운 그런 수준의 소설은 아니었는지 2006년에 낸 소설집은 그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입시에만 매몰되어 있는 일반계고등학교로 옮겨 조금은 숨통을 트는 비교과활동도 꽤 열성을 모아 실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절집 상좌의 이야기 하나 하지요. 큰스님과 상좌가 산 밑, 사바세계에 일 보러 나갔다 돌아가는 사이, 비가 내려 개울이 넘치고 있었답니다. 헌데, 그 개울을 건너려는 여인네 또한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보고, 큰스님이 냉큼 등을 댑니다. 업히라는 것이지요. 그래, 연인네를 건네줍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산문을 향해 걸음을 떼는 큰스님을 따르던 상좌는 이게 무슨 해괴한 행태인가 내내 고심하다, 절집 문 들기 전에 묻습니다. 큰스님, 어찌 제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십니까? 모르겠나이다. 큰스님 이르시길,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하고 되묻습니다. 상좌가 무릎 뚝 꺾으며, 무릎을 툭 쳤다고 합니다. 넘어지진 않았겠지요. 늘 산길을 타는 분네들이시니…. 깨달음이란, 이렇게 쉬이 오기도 하는가 봅니다. 저는 아직 ‘깨달음’이란 지경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논하는 경지, 그 발치엔 접근도 못했습니다. 그래, 이 나이 들도록 여전히 흔들리며 사는 게 못내 아쉽고, 서럽기도 해서 오늘은 마음을 닦는 어느 연수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짬을 내 쓰고 있습니다. 여직 오리무중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마음을 닦게 된다 이르지만, 저는 아직 깜깜합니다. 이 연수회에서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쌓아둔 여러 영상의 모습(사진)을 모두 버리라고 합니다. 무슨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제게 덮씌워진 트라우마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수 첫날입니다만, 저는 굳이 여기서 깨우쳐 나가겠다고 하는 다짐,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참 잘 쉬었다 나갈 수 있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연수를 하려 합니다. 나를 깨우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퍼뜩 찾아오는 시간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예감 때문입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경우가 참 많아서요. 여기까지 쓰다가, 제가 최근에 자그만 돌집을 하나 어느 산속에 지어 붙인 당호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이이당(耳耳堂)’이라 지었습니다. 고심 끝에 지은 이 택호가 저의 무릎을 탁 치게 합니다, 지금. 깨닫지 못한 저에게 딱, 이거다 싶은 집 이름이라 여겨저서요. 깨닫지 못한 자가 입을 놀리면, 불화를 쌓게 됩니다. 입 닫고 말 덮고, 귀만 열어 놓아야겠다는 것이지요. 어느 날 그집에 들어, 듣기만 하며 살겠다고 읽으면 되리라 여깁니다. 이게 저의 깨달음의 소산이라면 좋겠지만, ‘놓지’ 못하고 사는 제가 오늘 그나마 여기만큼이라도 도달한 수양의 단계입니다. 당호를 걸어놓기에도 아직은 부족해서 후배가 써준 서각을 걸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걸게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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