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만드는 매

경찰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젊음을 불살랐던 세월이 벌써 30년을 훌쩍 넘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도 많지만 그래도 긍지와 자부심이 크고 보람 또한 많은 직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찰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작금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로 국민에게 큰 실망과 염려를 안겨주고 우리 경찰 내부적으로도 자괴감과 자성의 몸부림이 요동 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일부 경찰들의 수사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사건으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으며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내홍을 겼었다. 법 집행과정에서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언젠가 어느 고전에서 읽었던 의미 있는 일화를 옮겨 본다.
조선조 오백년을 통틀어 으뜸가는 명 재상이자 청백리였던 황희 정승이 공무에서 잠깐 짬을 낸 어느 날 하루 집에서 쉬게 되었다.

복잡한 국사를 떠나 모처럼 사가에서 쉬는지라 긴장이 풀려서 깜빡 오수에 빠졌다가 잠결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운 채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선반 위에서 쥐 두 마리가 무엇인가를 천천히 운반하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쥐들은 선반 위 접시에 있는 배(梨)를 운반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물에 불과한 하찮은 쥐들이 서로 협동하여 지혜롭게 배를 운반하는 것이 하도 신기하여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한참 후 쥐들이 그 배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황희 정승은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계집종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었다. 계집종이 무슨 큰 잘못을 했는지 정경부인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네 짓이 분명 하렸다"
“흑흑 아닙니다 마님, 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제가 그러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선반에 있던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네 짓이 분명한데도 나를 속이다니 네가 바른말을 할 때까지 치겠다"

정경부인은 계집종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계집종이 고통스럽게 매질을 당하자, 황희 정승은 진실을 말해줘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에 계집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 배는 제가 먹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황희 정승은 무엇인가로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황희 정승은 곧장 그 길로 입궐하여 세종임금을 배알하고 그 기막힌 사건을 아뢰었다. 그리고 나서 옥방에 갇혀있는 죄수들 중에 죄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방면해줄 것을 주청했다. 그러자 세종 임금은 즉시 죄수들 중에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방면했다. 황희 정승은 그 기막힌 사건으로 인하여, 매(고문)가 없는 죄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흥미 진진하게 읽었던 고전이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요즈음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화이다. 우리 경찰은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업무가 많다. 그러기에 행여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국민 만족을 우선시 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경찰활동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경찰이 되도록 다짐해본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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