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을 한결같이 한 자리만 지켜온 배금선 할머니

광양 5일장을 찾았다. 강추위 때문인지 평소보다는 사람들의 왕래가 조금은 적어보였지만, 그래도 장날답게 물건 흥정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간마다 뻥뻥하고 터지는 뻥튀기 기계 소리는 시장을 더욱 흥겹게 달구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정말 삶이 힘들어 생을 포기하고 싶다면 시장으로 가 보라고. 그러면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광양 5일장이 그랬다.

장터는 사람들의 속살을 벗기며 날것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형 매장처럼 카트를 밀며 매끈한 종업원들의 가식적인 인사가 없어도 시장은 삶이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따 총각, 이거 떨이로 줄팅깨로 얼릉가져가소󰡓 나를 총각이라고 부르는 생선 가게 아주머니 넉살이 밉지가 않다.

방송은 오늘이 최고로 추운 날씨라며 호들갑을 떨어 댔지만 5일 장은 동장군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바삐 오가며 물건을 흥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애쓰는 상인들은 추위도 잊게 만들었다. 광양에 5일장이 선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장터는 단순하게 물건만 파는 장소는 아니다. 이웃들 간의 따뜻한 정을 함께 사고 파는 곳이다. 현대식 대형마트하고는 또 다른 정서가 숨 쉬고 있는 곳이 바로 장터인 셈이다. 1964년 개설 된 이래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이어오고 있는 광양 5일장. 이 장터의 골목 구석구석은 몇 십년동안 울고 웃으며 함께 했던 이웃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중에는 53년 동안 뻥튀기 하나로 이 자리를 지켜온 배금선(77세) 할머니가 있다. 처음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본인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설마 할머니가...' 우습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능수능란한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쩍 벌어진다. 장인(匠人)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뻥튀기 장사를 한지 50년이 넘었제. 영감이 37세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식들 멕여 살리려고 시작을 했제' 그 세월이 반세기를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뻥튀기로 6남매를 먹여 살렸다고 한다. '오두막집에서 6남매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제. 지금은 부자할머니라고 말하지만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제.' 지금은 순천 아랫장, 윗장 그리고 옥곡장날이 서는 날이면 할머니 사위들이 뻥튀기로 시장을 접수한다고. 이날도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아들까지 동원돼 할머니를 거들고 있었다. '저기 우리 아들이요. 정말 잘 생겼제. 지금은 건설회사 댕기는 데, 쉬는 날이면 이렇게 와서 돕고 있제. 울 메느리도 얼매나 착한지 몰라' 할머니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아들은 키도 크고 준수해 보였다. '저 아들이 키도 크고 운동을 잘해 광주에 있는 체육 학교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 때는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제' 할머니는 순천 해룡이 고향이라고 했다. 지금은 공단이 들어서는 바람에 고향도 다 없어지고 말았다고. '그 당시는 부모가 쨈매준대(맺어준대로)로 시집을 가야했기 때문에 냄편이 좋고 싫고도 없었제. 그래도 자식들 놓고 잘 키웠는데 요즘은 자식이 하나밖에 아닌데 내팽개치고 가버리는 것을 보면 참 맴이 아프제' 그 당시 모든 어머니들이 그랬겠지만, 할머니 역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보란 듯이 자식들을 건강하게 길러 냈던 것이다.

이제 할머니는 이 분야에 이미 도통한 사람이 됐다. '뻥튀기는 불 조절이 제일 중요해, 곡석(곡식)마다 틀링께 그 때마다 알아서 잘 조절을 해야제' 연신 뻥튀기 기계는 뻥뻥 울려댔고 그 때마다 할머니 손놀림은 우아한 춤사위처럼 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가 편리한 것만 따라 살아가는 시대에 할머니는 그 자체로 너무 많은 삶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누구의 삶이 됐건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퍼포먼스(행위예술)를 연출하는 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배웠다는 사람은 자신을 포장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지만, 거기에는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배금선 할머니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건함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이 점점 얄팍해지는 요즘, 그리고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현대인들에게 배금선 할머니는 인내를 배우게 하는 한 권의 살아있는 인생교과서와 같았다. '건강닿는데까징 이 일을 해야제' 라고 말하는 할머니 음성은 마치 신의 계시처럼 들려왔다.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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