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찬성론자의 일방적 여론몰이로 ‘폐교’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던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나면 슬프기 마련이다. 특히 본인과 관계가 있을 때 그 슬픔은 두 배로 다가오는 법이다. 마음 가는 곳에 정도 가고 생각도 가는 법 아니겠는가. 그동안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광양태금중학교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통폐합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행정편의주의와 통폐합 찬성론자의 여론몰이에 의해 놀아났다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그에 따른 내막은 역사가 심판을 할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학교를 찾아 본 결과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기자는 학교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광양태금중학교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수업을 끝으로 36년간 맥을 이어오던 광양태금중학교는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지게 되며, 이제 앨범 속에서나 꺼내 보는 박제된 학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람도 슬펐던 것일까?
태금중학교를 찾은 지난 금요일, 칼바람이 불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바람도 섭섭하다는 속내를 들어 낸 것이었을까? 바람은 세차게 학교를 향해 불고 있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체육시간인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운동장 뽀짝 옆에서는 공사하는 포크레인이 하루라도 빨리 이 학교를 떠나라는 듯이 위협하는 모습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본 기자가 보기에도 학교 주변 환경은 심란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공부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혔다. ‘그동안 우리는 뭘 했을까’, 하는 자책감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목울대를 타고 넘어왔다. 학교 주변에 하나둘 공장이 생기기 시작할 때도 다들‘설마’했었다. 왜냐하면 통폐합대상의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전을 할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현재 학 교책임자와 일부 학부모 지역 대표들이 나서서 학교를 통폐합해야한다는 쪽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바람에 태금중학교 총동창회는 미쳐 손쓸 새도 없이 통합 쪽으로 서둘러(졸속으로) 가닥을 잡고 말았다. 물론, 통합추진측은 충분히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나, 태금중학교 총동창회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어떻게 3개월도 채 안 되는 시점에 그렇게 36년 된 학교를 통폐합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보이지 않는 정치인의 손에 놀아났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거기에 덩달아 장단을 맞춘 기관장 대표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날 학생과 교사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니 하나같이 학교가 통폐합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본 기자는 먼저 교무실에 들려 김 모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솔직히 이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멀쩡한 학교를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리고 전남도교육청에서 안전진단을 나왔다고 하는데, 양복 입은 사람 몇이 육안으로만 보고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마치 주인도 아닌 사람이(도교육청) 일방적으로 집을 허물면서 세입자에게 나가라고 하는 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라며 몹시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결국은 학교 책임자와 지역 일부 대표들이나서 졸속으로 학교 하나를 없애버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단지 이녁 자식이 그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36년의 역사를 불과 3개월 만에 사라지게 만든 셈이다.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 희생양”
새삼스럽게 지나간 일을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하게 짚고 갈 일은 확실하게 해 둬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성서에 보면 빌라도라는 총독이 나온다. 그는 아무런 죄도 없는 청년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이미 예수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대중의 여론에 떠밀려 결국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죄가 없노라” 라며 물로 손을 깨끗이 씻었지만 그 죄는 2천년을 넘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진실은 그런 법이다. 현재는 통합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학교를 팔아먹은 빌라도로 둔갑하게 될 것이다. 사실 통폐합 전에도 태금중학교 이전 문제는 간간이 거론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위치에는 중학교가 있을 장소가 아니라는 데는 모두가 찬성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이렇게 졸속으로 서둘러 학교를 없앨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학교 건물이 안전 진단에서 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 격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학교건물 안전진단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폐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 이전에도 태금중학교 이전문제는 심심찮게 거론되곤 했으나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해 표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대안 중에 더러는 태인초등학교와 임시로 병합을 하고나서 대안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지만 그 마저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공부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게 그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주민들 대부분은 정말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를 참작해 본 결과 처음부터 학교를 없애자고 작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이럴 수는 없는 문제 아닌가.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태금중학교 잘 나간다는 기사까지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폐교를 시킨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겠는가. 현재 전남도에는 260개 중학교가 있는데 태금중학교 이하 규모가 108 곳이나 된다.

“기자 아저씨, 우리는 정말 가기 싫어요!”
마지막 수업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2학년 교실에 들렀다. 아이들은 학교통폐합과 방학을 앞두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먼저 사진 촬영을 끝내고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지금 제철 중학교와 통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친구들은 손을 들어 보세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은 90% 이상이 통합을 반대한다고 했다. 아이들도 이때다 싶었는지 중구난방식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기자 아저씨, 우리학교가 없어지지 않도록 기사를 써 주세요!”, “우리는 정말 가기 싫거든요”, “내신이 불리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힘들 거에요”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압도 적으로 많았다. 지금까지 학교 이전 문제는 아이들 의사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셈이다.

당사자는 아이들인데도 전혀 참작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본 기자는 몹시 부끄러웠고, 가슴이 아팠다. 겉으로는 아이들을 생각한다고 했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형태로던지 이권이 개입되거나 혹은 학교 책임자처럼, 하루라도 빨리 이 학교를 떠나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책임 문제에서 어떻게든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급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1975년8월15일 학생 일동
학교 정문 옆에는 ‘학생들의 꿈을 가꾸는 행복 학교’ 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정말 학생들의 꿈을 가꾼다는 게 뭘까? 흔히 교육을 100년 대계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들은 10년 대계도 되지 않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태금중학교는 1975년 3월에 개교해 지금까지 2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36년의 깊은 역사와전통을 가지고 있는 학교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잠시 공적기념비 앞에 섰다. 기념비에는‘1975년8월15일 학생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자꾸 뒤돌아보며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한 장의 사진이 훗날 역사가 돼 증언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문을 빠져 나와 잠시 뒤돌아본 학교는 멀리 삼봉산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 순간 36년 전 이곳에 학교를 유치하기 위해 힘쓰고 애쓴 주민들의 노고와 눈물이 떠올랐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말에 태인동 2구에 거주하는 이 모씨(68)씨는 “어떻게 해서 세운 학교인데, 그게 보통 학교인줄 아느냐? 그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전체 마음을 모아 지은 학교라”며 못내 허망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렇게 탐방을 마치고 기사를 정리하는 데 태인동 출신인 김영만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너는 죽어서 별이 되고/ 나는 살아서 어둠이 되었으니/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행동하지 못한 나의 지성(양심)’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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