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 옥 조선대 교수
이렇게 해서 또 한 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필자처럼 60줄을 넘긴 사람에게는 한 해가 사라지는 게 단순히 해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바뀌는 문제라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혹시나 잘못 살아오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부터 시작해서 새해는 또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꾸려갈까 나름대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에 치과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치과진료 의자 위에 자그마한 잡지가 하나 있어 펼쳤더니 姜栢年(강백년)의 섣달 그믐날이라는 멋진 한시가 쓰여 있었다. 酒盡燈殘也不眠(주진등잔야불면) 술이 다하고 등불 기름이 떨어져도 잠은 오지 않고/ 曉鐘鳴後轉依然(효종명후전의연) 새벽 종소리 울린 후에도 여전하구나 /非關來年無今夜(비관내년무금야) 친구여, 내년을 생각마라 오늘 같은 밤 다시 오지 않으니/自是人情惜去年(자시인정석거년)이제부터 사람들 마음은 가는 해를 아쉬워하리니/ 강백년의 이 한시가 어찌나 내 가슴을 흔들던지 앓던 이(齒)조차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긴, 누구의 인생이든 가는 세월이 안타깝지 않으련만, 어떤 나이냐에 따라 시간은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겐 무료한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다투는 절박한 시간일 수도 있다.
젊을 때는 마냥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여기며 살게 마련이지만, 돌아서면 그들 머리에도 어느새 저승사자의 그림자가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한 해를 이렇게 무사히 보냈다는 자체에 먼저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정말 모든 사람들의 덕분(德分)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내게 덕을 나누어 주었기에 이 시간까지 생명을 연장하면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만나 “당신 덕분이요” 하면서 진심 담긴 인사를 하려고 한다. 이 보다 더 큰 인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데 인생을 소모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가련한 마음 그지없다. 아니, 그렇게 헐뜯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그 사실에도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면 말이다. 성서에 보면 해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다. 자연의 이치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은 날마다 새롭다. 모든 것은 반복되어도 사람의 생각을 늘 달라진다. 여기게 인간의 위대함이 존재한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새날이 되었어도 구태의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달력을 보니 3일 남았다.
이 3일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에 따라 한 해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찰라(刹那)를 살아가는 존재다. 심하게 말해 우리도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늘’이라고 하루 동안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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